대속죄일, 자신이 지었던 죄를 회개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다.

 

 


 

대속죄일 유래

대속죄일, 성력 7월 10일에 지키는 하나님의 절기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 내려온 날로 대속죄일 절기를 삼으셨다. 양력으로는 9~10월경에 해당한다.

대속죄일의 유래는 이러하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첫 번째 십계명 돌판을 받고 내려오던 날,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화가 난 모세는 그 자리에서 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렸다. 이날 삼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후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기로 결정하시고 모세를 다시 부르셨다. 첫 번째 십계명 돌판을 깨뜨린 지 40일째 되던 날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출애굽기 34:1~2)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부르신 날은 성력 6월 1일이었다. 그때부터 모세는 40일 즉 성력 7월 10일까지 하나님과 함께하며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았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내려오기로 한 열흘 전인 성력 7월 1일(나팔절)부터 나팔을 불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모세를 기다렸다. 드디어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 돌판을 들고 내려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기념해 속죄일로 정해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레위기 23:26~28)

 

 


 

대속죄일에 행하는 의식

대속죄일 절기는 대제사장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일 년에 딱 하루 ‘회개의 10일’이라 불리는 이날에 대제사장만이 행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성소의 출입이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안치된 지성소는 성소의 두 번째 장막으로 그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특별한 장소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잡은 염소의 피를 언약궤 덮개인 속죄소에 뿌렸다(히브리서 9:3~7).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해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이날에 와서야 온전히 사함받을 수 있었다. 속죄라는 의식은 하나님과 멀어졌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금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엮어주는 예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더없이 엄숙하며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이날을 기념해 왔다. 이와 함께 속죄일에는 성소에 뿌렸던 모든 피를 모아 ‘아사셀’이라는 이름의 염소에게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보내는 의식이 있다.

아론은 ···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위기 16:6~10)

 

 


 

대속죄일의 성취

구약시대 대속죄일의 예식은 성전 되신 예수님으로 성취되었다. 즉 일상생활에서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성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아사셀 수염소에게 그 죄를 안수해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 죽게 한 것같이, 평상시에 지었던 우리들의 죄가 성소로 표상된 그리스도에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사단 마귀에게로 옮겨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단은 최종적으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진 채 광야 무인지경 같은 지옥에서 고난과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속죄일 절기는 죄 사함을 바라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일 년에 한 번 꼭 지켜야 하는 예식인 것이다.

이날(대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 23:29~31)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생각하며 회개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소중한 하나님의 규례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나팔절로부터 10일동안 대속죄일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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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요나(Jonah), 기독교인으로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모습은 파란만장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여 물고기 뱃속에 갇힌 ‘도망자’ 요나의 모습부터, 강대국 앗수르의 중심부에서 담대히 회개를 촉구하던 ‘선지자’ 요나의 모습까지.

더욱이 12만 명이 넘는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시킨 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하나님께 볼멘소리를 한 요나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읍을 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요나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요나보다 큰 자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태복음 12:41)

기원전 612년경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니느웨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등장한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요나의 기별을 진지하게, 겸손하게 받아들여 범국가적으로 회개 운동을 펼쳤다. 반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더 큰 자, 곧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경고의 말씀을 전하셨음에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누가복음 19:41~44, 21:20~35).

요나의 전도는 심판의 날까지 눈여겨봐야 할 역사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답답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숨어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의 기별을 통해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려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하셨다. 성자시대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시며 유대인들의 회개를 촉구했다. 이는 성령시대 구원자로 임하신 성령과 신부께서 70억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애타는 마음을 대변한다(요한계시록 22:17).

사랑하는 자들아 ···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베드로후서 3:1~12)

 

 


 

요나의 외침과 니느웨의 회개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 요나가 ···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 2:10~3:1~3)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 나온 체험을 한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니느웨로 향한다. 니느웨는 도보로 한 바퀴 도는 데만 3일이나 걸릴 만큼 큰 도시였다. 사지로 들어가는 심정이었을 테지만 요나는 담대히 니느웨 사람들에게 외친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 3:4)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나온다. 아슈르 단 3세(Ashur-dan Ⅲ)로 추정되는 왕이 온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한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되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께서 혹시 그 뜻을 돌이키셔서 진노를 그치시고 우리를 멸망하시지 않을지 누가 알겠느냐?” (요나 3:5~9)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인들이 금식하며 회개하자 그들에게 내리려고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요나의 말대로라면 니느웨는 무너졌어야 했다. 그러나 니느웨는 건재했다. 요나는 화가 났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자기가 실없는 사람, 거짓말한 사람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요나처럼 실없는 사람이 될까 걱정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 여러분~~~ 요나처럼 외쳐서 많은사람들은 회개시킵시다^^

 

 

<참고자료>
1. 아놀드 C.브랙만, 『니네베 발굴기』, 대원사(1990년)
2. 허진모, 『모든 지식의 시작1』, 미래문화사(2017년)
3. 홍익희, 『유대인 이야기』, 행성:B잎새(2013년)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는 환자가 약을 올바르게 처방받고도 의사를 믿지 못하여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플라시보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노시보는 라틴어로 ‘나는 해를 입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즉 약의 문제가 아니라 부정적인 심리와 정신이 그대로 몸에 작용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노시보 효과가 인간의 파멸까지 가지고 올 수 있는 위험한 질환임을 경고했다. 실제로 약 부작용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의료진에 대한 의심이 병을 키워 환자가 죽음에 이른 사례도 있다고 한다.

 

 

 


노시보 사례

 

전염병

 

어떤 마을에 풍토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갑자기 상당수의 주민들이 구토와 발열, 발진 등의 증상을 보였다. 실제로 몇몇 사람만 감염됐을 뿐인데 감염되지 않은 주민들도 풍토병 증상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관찰됐다. 메르스와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이 전염성 질환과 동일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급증했다는 보고가 있다.

 

항우울제 임상 실험

 

노시보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임상 실험도 있었다. 실험에 참가한 남자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지속적으로 복용하게 했다. 남자는 약을 과다 복용하면서 이에 따른 약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결국 실험을 중단할 만큼 건강이 위독해졌다. 이때 실험자는 남자에게 ‘당신이 먹은 약은 일반 비타민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급속도로 건강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 약은 진짜 항우울제였다.

 

약 부작용

 

2007년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약 부작용 사건도 노시보의 한 사례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제조 공장을 캐나다에서 독일로 이동했다. 약의 모든 성분은 동일했고 다만 생산국가와 약의 모양이 달라졌다. 그런데 약의 모양이 바뀌고 나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의 비율이 2천 배 가량 늘었다고 한다. 이유는 약에 대한 거짓 정보 때문이었다. 유전자 조작된 원료와 MSG가 첨가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인터넷에 퍼졌고, 심지어 언론에서도 약의 부작용을 겪은 사람들을 보도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고조된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언론보도가 줄고 사람들의 관심도 사그라들면서 약에 대한 부작용 비율도 종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환자들 대부분이 독일에서 만든 알약을 그대로 복용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결국 이 모든 사태가 노시보 효과 때문이었던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플라시보 효과와 달리, 노시보 효과는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의사들은 부정적인 심리상태를 가진 환자들을 우려한다.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검진으로 암 진단을 받은 후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되는 것도 부정적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외과 의사들은 살려는 의지가 없는 환자의 수술을 꺼린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지에 따라 그대로 우리 몸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노시보로 믿는 기독교인

 

죄 사함의 약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천국입성’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천국은 죄와 사망이 없는 장소다(요한계시록 21:4). 그러나 모든 인류는 죄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한다(로마서 6:26).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죄 사함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2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한 프로젝트를 세워주셨다. 그것은 바로 ‘새 언약 유월절’ 절기다.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28)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 유월절을 통해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다(요한복음 6:53~54). 이 절기를 소중히 지키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고,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별 세계를 시찰하게 되는 것이다(히브리서 1:14, 요한계시록 22:1~5).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마신다고 무슨 천국에 갈 수 있겠냐”며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면 되던 일도 안될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부작용을 걱정한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마음과 믿음이 무너진 신앙인은 ‘구원’이라는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새 언약의 약효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믿음으로 지키는 새 언약 유월절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8:5~13)

2천 년 전 백부장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을 앓고 있는 그의 하인을 고치시겠다는 말씀에 백부장은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백부장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의 근본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을 크게 칭찬하셨고, 백부장의 하인은 즉시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 예수님의 말씀을 진실로 믿고 행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노시보 믿음이 아닌 플라시보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유일합니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4~15)

초대교회 사도들과 백부장의 믿음이 어떠했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했다. 오늘날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유월절 먹기를 간절히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 진리가 있는 교회를 힘써 찾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편
2. 노시보와 플라시보, 제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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