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무더위를 날려보낼 수 있는 시원한 곳은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다. 무더운 여름을 위한 휴가지로는 뭐니 뭐니 해도 탁 트인 바닷가가 제격일 것이다.


그런데 바다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한 가지 무서운 규칙이 있다. 이름하여 ‘이안류(離岸流)’라는 해류의 규칙이다. 언론을 통해 종종 해안가에 있던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는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빠르게 휩쓸려가는 이안류 때문이다.


파도는 대개 바다에서 해안가로 밀려오지만 이안류는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급하게 흘러나간다. 그래서 ‘역파도’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이안류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꼽을 수 있다. 최근 3년 동안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200여 명이 이안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됐고, 미국에서는 1년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이안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해안가는 뭍에 사는 인간에게는 매우 위험한 자연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 육지가 마치 지옥과 같은 곳이라면 어떨까? 그 육지를 탈출하고 싶은데 감시는 삼엄하고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배도 없는 상황이라면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휩쓸려나가는 이안류야말로 자유를 향한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엉뚱한 발상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안류를 이용해서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을 쳤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빠삐용이다.


빠삐용은 영화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73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작품 ‘빠삐용’은 살인죄의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프랑스의 무기수 앙리 샤리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어로 나비가 빠삐용(papillon)인데, 그의 가슴에 나비 문신이 있어서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빠삐용은 친구 드가와 함께 여러 차례 탈옥을 감행한다. 그때마다 탈옥에 실패했고, 그들은 결국 탈옥이 불가능해 보이는 섬으로 끌려간다. 악마의 섬이라 부르는 섬 근처에는 상어가 우글거리고 파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빠삐용은 끊임없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의 그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해안 절벽에 앉아 섬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자신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규칙’을 발견한다. ‘이안류’가 그것이다.


빠삐용은 파도를 바라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파도가 일곱 번의 주기로 바뀌며, 그중 가장 강한 일곱 번째 파도가 칠 때 그 이안류를 타고 섬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영화는 코코넛 자루를 타고 망망대해로 사라지는 빠삐용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빠삐용은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여생을 자유의 몸으로 살았다. 이 악명 높은 기아나의 감옥도 그를 굴복시키진 못했다.”


빠삐용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견했던 것이 이안류의 규칙이었다. 악마의 섬 쪽으로 늘 거칠게 다가오는 파도 속에서 일곱 번째마다 발생하는 이안류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 규칙에 몸을 실어서 빠삐용은 드디어 악마의 섬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예레미야 31:35~36)

 


낮과 밤과 바다의 파도 치는 것을 규정 즉 규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지구와 달의 인력으로 밀물과 썰물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파도가 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규정이라고 하였고, 또 규례라고 하였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편 119:91)

 


빠삐용이 발견한 이안류의 규칙은 바다를 격동시켜 파도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며 천지의 규례다. 이안류의 규례가 빠삐용에게는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범죄한 천사들의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범하고 이 땅으로 쫓겨났다. 형무소인 이 땅에서 살아가며 인생들은 죄의 사슬을 풀지 못한 채 사망의 두려움에 매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형수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한 육체에는 서서히 질병과 가난과 고독이 깃든다. 사망의 두려움이 조여오는 불안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생들에게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파도에게 규정과 규례를 허락하셨다. 낮과 밤이 번갈아 임하면서 인생들에게는 일자와 연한이라는 규칙이 정해진다. 악마의 섬으로 들이치는 수많은 파도 중에서 특별한 이안류의 규칙이 있었던 것처럼 인생들에게 임하는 많은 일자와 연한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규칙인 일곱째 날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를 규례로서 허락하셨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레위기 26:2~5)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2~14)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향하는 모든 것이 사방으로 막혀있고, 사망이 지배하는 이 외딴 행성 지구에서 하루하루 삶의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절망의 섬으로 들이치던 파도에 그 섬을 탈출할 수 있는 이안류의 규칙이 있었던 것처럼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안식일과 유월절 등의 규례와 법칙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빠삐용은 이안류의 규칙에 몸을 맡겨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일곱째 날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에 우리의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 그 특별한 규례와 법칙이 우리를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나래를 펴는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나는 절기를 지키러 즐거운 몸부림을 치며 나비처럼 날아서 시온에 간다.

 

 

 

 

 

 

 

 

 

 

 

 

http://www.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2060

 

이날 ‘성공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주제로 본격적인 인성교육이 시작됐습니다.

김주철 목사는 “성공한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며

성경 내용을 기준으로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제48차 해외성도 방문단

비행기 표까지 다 샀어도 12명 못 옴
두나라를 통과할때 각 나라의 법이 달라서 통과못해서ㅠ

요18.36  내 나라는 하늘에 속한것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자

롬12.1ㅡ2 이세상을 본받지 마라

하늘 사람이 이 세상을 본받아서는 안됨

빌3.18ㅡ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자녀이면 하늘의 속한자로 하늘 법으로 판단받음

안 좋은 전과를 만들어 놓으면 안됨

안식일 법에 걸리지 않도록~

엡5.1ㅡ5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행하던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자녀이면 새사람으로 거듭나라

엡4.27ㅡ29 오직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자녀이면 하나님 하라시는대로 덕스러운 말을 합니다^^







 

 

 

 

 

 

출처는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6167

 

남해군 상주면 은모래해변 일대에 하나님의교회 성도 600여 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백사장 2km 구간에 해양 쓰레기 수거를 하였습니다

 

 

 

 




한번 태어나면 죽는 인생
사망없는 천국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눅16.19 선지자가 전하는걸 듣지 않아서 지옥에  가면  죽은자가 살아와도 안들음


안식일 지키는것보다 즐기는 자는 부자
이 땅에 욕심 없는 나사로


벧전1.17  나그네로 있는 동안 두려움으로 지키라


'어떻게 해서라도 지옥만큼은 가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마음


겔3.17ㅡ21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계3.15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천국의 가치를 알면  차든지 뜨겁게 복음을 전하든지~


눅22.27ㅡ30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단12.1ㅡ3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


눅19.15ㅡ27
한므나ㅡ자기만 아는 '나만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
열므나,다섯므나ㅡ남을 생각하는 사람


마25.41 훼방한 저희는 영벌에 복음에 함께한 너희는 영생에


계20.11ㅡ15 자기 행위대로 심판


주눅들지 말고 회개시키는 일에 함께 하기를 바라시늣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말4.1ㅡ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
이시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우리는 새언약 유월절로 하나님의 성체가 우리안에 있으니 재앙의 날에 사는거죠


죽으면 어떻게 되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했던 부자가 지옥의 고통 중에 후회했던 일이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출처는

http://news.suwon.ne.kr/main/section/view?idx=1047224

 

 

7월1일 오전, 영통 하나님의 교회 교인들과 태장동 직원 15명은

망포공원을 비롯해 태장초등학교 사거리까지 약 550m구간에 대한 환경정화 활동과 더불어

깨끗한 거리 만들기와 불법행위 근절 등을 위한 선진영통 문화시민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수원 영통 하나님의 교회 교인들은

 월 1회 공원, 주택가, 대로변 등 도심일대 환경정화 활동에 나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텃밭에서 기른 상추 잎을 뜯는데 상추가 ‘아야’ 하고 비명을 지른다. 잔디밭을 걷는데 발아래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와 양들이 풀을 뜯어 먹을 때마다 풀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친다. 과수원의 과일을 따고 가지치기를 해주는데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온 세상은 엄청난 소음과 고통의 비명으로 진동할 것이다. 식물이 말을 하지 못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우리가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놀랄 만한 일이 있다.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식물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은 자신을 위하기보다는 주변의 식물들에게 주의를 주는 경고 신호다. 이른바 ‘말하는 나무’ 현상이다.


미국 델라웨어대학의 연구진은 쌍떡잎식물 애기장대를 실험한 결과, 상처 입은 식물이 주변의 다른 식물에게 공기 중으로 경고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잎이 뜯긴 애기장대가 휘발성 물질을 뿜어내어 주변에 있는 다른 애기장대가 뿌리를 더욱 튼튼히 내리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실험에 의하면,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애기장대 표본 가운데 언제나 상처를 입지 않은 애기장대의 뿌리가 눈에 띄게 급속도로 튼튼하게 자랐다고 한다. 옆에 있는 식물이 방어력을 높이도록 신호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실험을 수없이 반복한 하시 바이스 교수는 “상처 받은 식물은 공기를 통해 신호를 보낸다”며 “이것은 자신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료 식물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의 연구진들과 멕시코 신베스타브-이라푸아토대학의 연구진들도 각각 2008년과 2012년 실험을 통해, 식물이 위험이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아스피린과 유사한 살리실산메틸(methyl salicylate)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바 있다. 연구진은 “이 물질이 식물끼리 서로 위험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리마콩(Lima bean)이 벌레에 먹히거나 병에 걸렸을 때 이 물질을 발산했고, 주위에 있는 리마콩의 저항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사는 아카시아의 동료애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남다르다. 아카시아는 염소나 영양에게 잎을 먹히기 직전 잎의 타닌 성분과 단백질을 결합시켜 소화하기 어려운 성분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이웃에게 경보를 발령한다. 위험을 감지한 이웃 아카시아는 화학반응으로 잎을 맛없게 만들어버린다고 한다.


식물들이 내뿜는 휘발성 화학물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말 못하는 식물들조차 위험에 처할지 모를 주변 동료들을 위해 열심히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위험을 알려주는 사이렌처럼 말이다.

 

 


성경은 온 지구상에 재앙이 도래하는 고통의 순간이 온다고 예언하고 있다(이사야 24:1~5, 베드로후서 3:7~12).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대홍수 때 구원의 방법을 미리 알려주셨던 것처럼

 경고의 기별이 있을 때 반드시 구원의 기별도 함께 알려주셨다.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예레미야 4:5)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안전하길 바란다면 무엇보다 열심히 시온-하나님의교회를 알려야 한다.

시온-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허락하신 유일한 구원의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시온-하나님의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곳일까.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33:20~22)


바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 시온-하나님의교회다.

 즉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절기를 지켜야 마지막 재앙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절기를 부지런히 알리고

그들을 절기 지키는 시온-하나님의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영원하고 영화로운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복락을 나 혼자만 누리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재앙의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면, 천국에 입성할 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지인, 이웃들과 함께하길 소망한다면 지금 최선을 다해 동료애를 발휘해보자.

말 못하는 식물들이 동료에게 열심히 경고의 신호를 보낸 것처럼.

 


<참고자료>

1. ‘Plants call 911, too’, 델라웨어대학교(University of Delaware) 웹사이트, 2017. 5. 16.

2. ‘식물의 화학전쟁…아카시아, 염소 오면 잎 맛없게 바꿔’, jtbc뉴스, 2014. 5. 19.

3. ‘식물도 병충해 냄새 맡고 대응’, 연합뉴스, 2012. 3. 7.

 

 

 


 

 

 

구속(救贖)은 ‘구원할 구, 속죄할 속’ 자를 써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내는 일을 뜻한다.

누군가를 대신해 값을 치르거나 벌을 받음으로써 구원한다는 의미다.

성경에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며,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어 있다.

 

∙∙∙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 (출애굽기 6:6~7)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대표적인 구속의 사례로는 애굽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주신 역사다.

당시 이스라엘은 4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애굽으로부터 온갖 학대와 핍박을 받으며 서러움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해주시기 위해 놀라운 계획을 진행하셨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어린양의)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1~13)


주전 1498년경 애굽 전역에 통곡과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애굽 왕 바로의 장자에서부터 짐승의 첫 새끼까지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2:29~30).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그동안 이스라엘의 독립을 완강히 거부하던 바로왕이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역사에는 주목할 만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옥과도 같은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장자를 멸하는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기 위해 어린양의 희생을 요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목숨의 대가로 애굽의 끔찍한 압제에서 ‘구속’받을 수 있었다.


구속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류의 구속이 완성된다고 기록했다(로마서 3:24).

구속의 대상이라는 것은 옛적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날 우리도 무엇엔가 억압되어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면 사망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이다. 결국 모든 인류가 사망 죄에 억압되어 죄악 세상에 종살이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로마서 7:24 참조).


인류의 죗값을 대속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사망이라는 형벌이다(로마서 6:23 참조). 그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당하신 십자가 형벌은 심하게 매질한 사람을 말뚝 위에 묶거나 못 박아 두는 방식으로

신체의 극심한 고통과 함께 수치심, 배고픔, 목마름,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잔인한 형벌이다.

여기에는 또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목숨을 내던지셨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채찍에 맞은 고통으로 쇼크를 받아 즉사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세차게 내리치는 채찍의 괴로움을 고스란히 감내하신 예수님께서는 70kg로 추정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에 못박혀 운명하셨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목숨의 대가로 죄와 사망에서 구속받게 된 것이다.


3500년 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된 것은,

죄악 세상에서 종살이하는 인류가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피로 구속될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결국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월절은 ‘종살이’라는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희망의 절기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구속의 방법은 분명하다.

오직 유월절을 지켰던 이스라엘 백성만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운명처럼 떠안고 있는 죄의 종살이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 역시 동일하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며 놀라운 ‘구속’의 역사인 것이다.

구속(救贖),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 나아오세요~


<참고자료>

1.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2. ‘예수를 만나다 –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는 몇 kg이었을까, 중앙일보, 2017. 1. 11.

 

 

 

 

 

 

 


2천년 전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따랐던 사도들...
그러나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사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육신적으로 아는 부분을 잣대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세상 속에서 사도들은 육신이 아닌 성경의 예언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마13.14 이사야의 여언이 이루었으니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본 가룟유다의 마음은 어떠했나?
더이상의 기적을 베풀기보다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께 계속 기적만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자들과 말씀을 듣고 구원자로 영접한 자들로 구분됨
오직 믿는 자에게만 보이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도 오직 믿는 자에게만 보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고서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었던 베드로와 같이 이시대 사람으로 오신 안상홍 하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왕따를 당했던  삭개오의 가정에 임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에 하나님께 모든 죄를 고하고 갖은 눈총 속에 모은 재산의 절반도 잘못 거둬들인 세금도 다 돌려주겠다는 삭개오의 믿음은 진정 이 시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 죄사함 받은 우리가 보여야할 믿음이 아닌가?


 

 

 

 


얼마 전 일요일은 오순절이었습니다. 약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초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을 허락해주셨던 바로 그날입니다.

 

성령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의 수많은 외국인들이 사용하던 갖가지 방언을 유창히 구사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파했습니다. 이날, 성도들의 수는 삼천 명이나 늘어났습니다(사도행전 2:41).

 


오늘날까지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기적적인 부흥의 역사를 부러워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성령을 구하는 집회도 많지만 이미 초대 하나님의교회와 같은 성령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교회들도 꽤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성령을 받았던 성경 속 인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누가복음 2:25~33)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1:29~34)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운명 직후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숨기 바빴습니다. 그들이 자신 있게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증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령의 축복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장차 구원받을 성도들의 특징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꼽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완전한 새 언약임은 여러 칼럼들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구원자를 증거하는 성령입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요한계시록 19:10)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누가복음 12:12)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4)

 

 


흔히 성령의 역사를 말하면 기상천외한 기적을 떠올립니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때처럼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놀라운 역사를 기대합니다. 그런 육신적인 기적이 정말 성령 축복의 전부일까요?


모든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하던 영혼의 나그네들입니다. 사망의 종이었던 자들이 성령을 힘입어 구원자의 성호를 깨닫고, 그 거룩하신 이름을 전파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는 일.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가장 큰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 당신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을 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구원자의 이름을 밝히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새 이름을 자녀들에게 알리셨습니다. 또한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도 자녀들처럼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로 사람들이 전혀 몰랐던 ‘예수’라는 이름을 전했듯, 이 시대에 성령을 받은 자들은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진리를 널리 알립니다.


얼마 전 오순절을 지켰습니다. 성령 받았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귀한 절기입니다. 저는 오늘, 마지막 시대의 구원자이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전하려 합니다. 성령에 감동됐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요.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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