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3524

 

 

 

청주 서원구 성화개신죽림동(동장 어윤숙)의 '하나님의 교회'(목사 지상훈)는

 19일 교회신도 및 시민 100여 명이 참여해 성화동 일원 대청소에 나섰다.

 

이번 대청소는 KBS방송국부터 장전공원에 이르기까지 약 3.5km 일대의 상가, 주거 밀집지역, 주요 도로변 및 공원 등

동절기 내 곳곳에 쌓여 있던 쓰레기들을 정비하기 위해 실시했다.

 

 

 

 

 

 

 

 

 

 

 

삶에 대한 응답이 종교라고 한다면 유교도 분명한 종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교는 종교가 아닌것으로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견해다.

유교는 혼이 머무는 곳은 막연한 혼의세계로 생각하고 있으며 제사는 분리된 혼과 백이 만나는 매개란다.

그리고 제사를 둘러싼 종교간의 갈등도 심상치 않다.  유교는 유교식으로 제사하고 기독교는 기독교식으로 제사한다. 각자 나름대로의 효라고 주장하며 부모에 대한 효심을 제사로 들여내는 이들은 언제 부터 이러한 문화가 정착이 되었을까?

 

유교는 고대 중국의 한 철학 유파로 B.C 6세기경 공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래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부른다. 공자는 B.C 551년에 취푸,

지금의 산동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유교 교리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다섯 가지 유교경전은<시경(시집)>,서경<고대 역사책>, 예기<제례에 관한책>,역경<주역에 관한 책>, <춘추(춘추시대의 역사책)>이다. 공자학설의 근본으로 여겨지는  책들은 철학,사회,정치,지식의 체계를 동시에 제시한다. 춘추전국시대(B.C 770~476SUS)의 격동기에 탄생한 유교는 인간관계의 조화와 평화를 추구한다. 공자와 제자들과의 대화를 담은 (논어)는 공자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3000며으이 제자와 친구,친지,왕자,농부들과 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7대 종단은 정부의 지원과 사업 대상에 들어간다, 그런 현실적 이류로 1995년 임시유림총회를 통해 유교가 종교임을 선포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예배와 같은 의례적인 행위를 종교라 한다면 유교는 종교가 될수 없다. 그러나 유일신이 아닌 영혼.영생.죽음.위로 등 인간의 삶에 문제에 대해 응답하는 믿음의 체계를 종교로 본다면 유교도 분명한 종교가 된다.

 

유교의 죽음관은 공자 때까지는 없던 개념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교에서는 죽음을 한장으로 붙어 있던 종이가 두장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고 있다.

사람의 혼(기운)과 백(육신)이 결합되어 있다고 꼴(육신)은 유지가 된다 할지라도 기능상 연결이 안되어서 생명현상이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생물학적인 생명은 끝이 나는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바. 그렇지만 죽음으로 모든 관계가 단절된다고 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효 인데 효 라고  하는 것이 살아 있을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이어진다. 그 매개가 되는 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제사라고 한다.

기제사 라는 것은 돌아가시기 전날을 기념해서 하는 것이다. 혼은 기운이라는 것이고. 백은 땅에 묻는 육신이다. 제사는 이렇게 분리되었던 혼과 백이 만나는 시공간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제사가 끝나면 신위를 불태우므로 다시 혼과 백은 분리된다. 혼이 머무는 곳은 기독교나 불교처럼 시각화된 천국의 개념은 아니고 막연한 혼의 세계를 일컫는다.

종묘는 왕들의 혼을 안치하는 곳으로 왕릉은 왕들의 백 을 안치하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유교의 죽음관은 허구라고 볼수있다. 뚜럿한 혼의 세계가 어디닌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조상들이 부모가 혼의세계에 있을것이다는 추측만으로 제사를 하는 것이다.

 

 

 

 

제사가 처음엔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를 위한 예식이였다. 제사의 기원은 조상에게 지낸 것이 아니다. 산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마을과 나라나 인류를 위한 공적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도였으나 부계중심사회가 되면서 씨족이나 부족들의 내부 결속용 단합 의식이 되었다. 그러다가 조상에 대한 자손들의 효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제사때 향을 피우거나 무덤에 술을 붓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사의 방식은 두가지가 있다. 향초를 피우는 경우와 술을 드리는 경우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과 백이 분리되어 있다가 제사 때에 다시 결합하게 된다는 논리다. 술의 향취를 맡고 땅속에 있던 조상의 백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오게 되고 향을 피울 때 하늘나라에 계시는 조상의 혼이 향의 냄새를 맡고 오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술을 붓고 향을 피우는 것은 조상의 혼백을 제사하는 공간으로 모시는 방법이라며 의식을 하는것이다.

제사를 둘러싼 종교 간의 갈등 해소 방안은 있을까? 오늘날까지 같이 살던 분이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을 기념하고 기억하는것이 잘못일수는 없다.

방법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제사라고 하는 것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가지고 갈등을 하는 이들의 결론은 유교는 유교식으로 기독교는 기독교식으로 돌아가신분을 추억하고 기념하면 된다고들 한다.

유교의 공자의 경전과 가르침는 논어다. 유학의 체계를 세운 공자의 가르침이 농축된 책이라고 할수 있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인(仁)으로 나를 닦고 남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 이란 말과 같이 간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사람과 사라므이 관게에 있어서 불필요한 요소는 빼버리고  필요한 요소는 채워 넣으며 편안한 관계를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말하자면 살맛나는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사가 유교라고 한다면 나를 닦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데 부모가 조상이 죽은후에 얼마만큼 편안하게 할수 있는가. 모든것이 살아계시고 함께 있을때 나눌수있는 상황이라 할수가 있다. 과연 제사가 그러한 부분을 채울수는 없다고 본다.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가르침은 성경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진정한 나눔은 가족이든지.이웃 어른이든지 부모를 공경하는일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살아 있을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켜야할 십계명중 다섯번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제사를 지내고 기념하면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였다고 여기며 자식의 도리를 잘하였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살을 부딛끼며 함께 살아갈때 부모에게 불효를 한다면 가슴에 깊이 후회로 남을 일이다.그리고 후회로 남아 뒤늦게 부모에 대한 불효를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어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지켜야할 첫번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것이다.(출 20:12,신5:16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모르시어 제사를 지내면 안된다고 했을리는 만무하다. 오히러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자고 할수도 없다고 하셨다.(신21:18)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할 도리, 효의 가르침이 많다.

 


엡6:1~4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인류의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님이 계신다 . 육의 부모에게 공경하는일은 살아계실때 공경할수가 있고 행복하게 해 드릴수 있다.

제사는 죽은 후에 한다고 한들 아무리 하여도 죽은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과연 제사때 부르는 혼과 육의 만남이 나의 조상들 부모라고 할수가 있을까.

 

이는  하나님께서는 가르침을 성경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히9:27)

어디에서 심판이 있을까? 죽음은 육신과 영혼의 분리이다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가서 심판을 받는다. 더이상 영혼은 지구에 있는 후손들에게 올수가 없다.(계20:11~15,눅16:19~31)

 

그러므로 제사는 혼과 백이 만날래야 만날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알아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제사는 누가 지켜보고 있는가

 


고전10:18~22 육신을 따라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냐 .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란시다, 우리의 영혼이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되면 구원을 받을수가 없을 뿐더러 그이 종이 되기 때문에 염려하시며 제사에 대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계신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도 그리스 아테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사 하는 것을 답답함과 안타까움으로 전하는 장면을 볼수가 있듯이(행17:23~25) 만물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만이 존재하시 알지 못하는 신에게는 습관적으로 한다는 가르침을 바라볼때에도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제사라는 기원을 알지 못한채, 부모에 대한 효 를 다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사하는 이들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전하는 바다.

 

[참고] 시사인사이드

 

 


 

 

 

 

 

출처는
https://pasteve.com/?m=bbs&bid=border&uid=4753

 


신천지 신도들은 신천지에서만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며 굉장한 자부심을 보인다. 그들은 “기성 교단들은 계시록의 예언과 성취를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면서 어떻게 안다고 말하느냐. 진짜 보고 들은 자에게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자신감의 배경에는 ‘계시록을 증거하는 대언의 사자’ 이만희가 있다.


이만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예수님께서 천사에게 주신 계시를 신도들에게 전달하는 ‘사도 요한 격 선지자’이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보혜사’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정말 보혜사이자 사도 요한 격 선지자라는 이만희의 해석만이 요한계시록의 바른 가르침일까.


이 문제를 알아보기에 앞서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보혜사이자 사도 요한 격 선지자’라는 표현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모순이라는 점이다.


보혜사의 정의에 대해 신천지에서는, 영(靈)의 보혜사와 육(肉)의 보혜사가 있다고 가르친다. 영의 보혜사와 함께하는 사람이 말씀을 받아 영의 보혜사(보혜사 성령)와 같이 대언함으로 육의 보혜사가 된다는 개념이다.


그들의 교리를 적용해 보자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하셨기에 육의 보혜사이며, 이 시대에는 예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과 함께하는 이만희가 대언자 즉 육의 보혜사가 된다. 위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천지에서는 다음 구절들을 인용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보혜사는 대언자이므로 사람도 보혜사가 될 수 있으며, 보혜사는 대언하는 이의 직책일 뿐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그런데 사실 위의 성구들은 예수님과 성령이 한 분이심을 증명하는 구절들이다. 그들의 말은 성삼위일체를 부정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성경에서 예수님도 성령도 같은 보혜사라 증명하고 있으니 두 분은 일체가 아니시겠는가.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거룩하신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이시다. 예수님과 성령이 한 분이심을 증명하는 성구는 이 외에도 많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6~27)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34)


같은 로마서 8장 안에 ‘성령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이시다’라는 표현이 병기되어 있다. 사도 베드로의 기록에는


예언자들이 이 구원을 추구하고 연구하였으며, 그들은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그리고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표준새번역, 베드로전서 1:10~1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21)


역시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에 감동되어 예언했다는 말씀과 더불어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했다는 말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은 같은 분이시며, 따라서 예수님과 성령을 가리키는 보혜사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만희는 하나님일까 선지자일까. 신천지도 이 논란을 의식하는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천지의 교주는 오직 예수님’이라는 표현을 무척 자주 사용한다.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우선 그의 성경 해석이 올바를지 따져보자.


이만희가 그저 선지자라면 함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면 구원받을 수 없으며 거짓 선지자의 인도를 받는 자 역시 멸망받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22:18~19, 이사야 9:16). 이만희가 계시록의 예언과 성취를 직접 보고 들었다는 말을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겠는가.


이만희의 성경 해석이 참이라고 증명할 방법은 간단하다. 이만희가 재림 예수님이면 된다. 인봉된 성경의 비밀을 풀어낼 분은 다윗의 뿌리, 즉 재림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이다(요한계시록 5:1~6, 22:16).


재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두 번째 나타나셔서 자녀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나타나신다’는 표현대로 재림 예수님께서는 영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육체를 입고 오신다. 2천 년 전 예수님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두 번째’ 임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재림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뿌리만이 가지고 오실 수 있는 영원한 언약을 드러내시고 그 비밀을 자녀들에게 밝히 알려주셨다. 신천지에서는 여전히 이만희가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이 여전하다면 신천지의 계시록 해석은 전부 믿을 수 없는 일방적인 억지로 남게 될 뿐이다.


그들이 신앙을 이어가려면 적어도 두 조건 중 하나는 충족해야 할 것이다. 이만희가 재림 예수님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모든 성경 해석은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하든지. (다음 편에 계속 하나님의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출처는

 

새해벽두를 거리 정화의 봉사로 시작한 오산 하나님의교회 학생부 70여 명이 12일 대원동 일대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뜻깊은 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날 오산 원동 사거리에서 출발, 원동 초교 정문 및 이마트 주변 등

 3km에 해당하는 상가 밀집 지역 음식점과 주택가 대로변을 따라 거리정화를 실시했다.

수거된 쓰레기만 종량제 봉투(50L)로 15여 개 분량. 여기에 쓰레기와 곳곳의 불법 전단지 및 현수막도 수거하는 데 구슬땀을 쏟았다.

특히 이날 봉사는 하나님의교회 학생뿐만 아니라 방학 캠프를 통해 초대된 친구들도 함께했다.

 

 

 

 

 





마28.18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주고 가르쳐 지키게하라

눅24.47  그의 이름으로 족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 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

막9.2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9.29  믿음대로 되라

빛이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돈다는데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빛은 그보다도 빨리 이루어짐

미4.1  그가 그 도로 가르치실 것이라

그 도는?

렘31.31  새언약을 세우리라
그들의 속에 새언약을 두며~

율법, 계명, 언약, 약속은 다 같은 뜻

325년 이후 훼파되었던 새언약이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에 의해 다시 찾아져서 전 세계 흩어진 자녀들이 시온으로 돌아옴

사25.6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찾아주신 새언약은 생명의 도!

우리만 가지고 있을것이 아니라 온 민족에게 전파하라하심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이러한 사명을 주시고 행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심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가르침대로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 고향 찾기

 


2012년 호주 태즈메이니아. 한 청년이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선다. 청년의 이름은 사루 브리얼리. 그는 자신이 태어난 ‘진짜 고향’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사루는 다섯 살 때, 기차역에서 일하는 형을 따라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형을 찾으러 무작정 기차에 탄 사루는 14시간을 달려 콜카타의 하우라 역에서 내렸다. 아직 어려서 가족과 마을의 이름을 몰랐던 사루는 졸지에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자상하고 친절한 브리얼리 부부를 만나 호주로 가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사루의 가슴 한 편에는 여전히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향을 찾으려 시도했지만 어릴 적의 희미한 기억만으로는 드넓은 인도에서 그가 태어난 마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사루는 우연히 전 세계 어디든 원하는 장소를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접하고 꺼져가던 희망을 되살렸다. 몇 년 동안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프로그램으로 인도 곳곳을 샅샅이 뒤진 끝에, 형과 같이 갔던 역과 자신이 살던 마을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기억 속의 풍경과 일치하는 마을의 모습을 보고 사루는 드디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사루는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인도의 칸드와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좁은 골목 하나라도 지나칠세라 꼼꼼히 살폈다. 마침내 사루는 그 옛날 자신이 살던 집을 발견했다. 하지만 집은 비어 있었고 가족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향을 찾아 인도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왔건만….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때 사루의 앞에 한 이웃 주민이 나타났다. 이 집에 살던 사람을 만나러 왔느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사루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그곳에는 사루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있었다.


“엄마! 형!”


“사루, 정말 사루구나. 언젠가 네가 꼭 돌아오리라고 믿었어!”


너무나 듣고 싶었던 어머니의 목소리. 잊을 수 없었던 가족의 품. 사루와 가족들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다. 이제는 아무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 이산의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만난 가족들의 앞길에는 행복만이 가득하다.


고향이 어디인지 잊어버린 채 낯선 곳에서 고아의 처지가 된 것은 비단 사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이 지구에 사는 70억 모든 인류가 이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인 것이다.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하나님 곁에서 즐거워하고 있었다(잠언 8:22~30, 욥기 38:1~4, 21). 천상의 세계에서 날마다 기뻐하던 하늘의 자녀들이었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지구로 쫓겨 내려와서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죄수로 전락하고 말았다(로마서 6:23).


천상의 기억을 망각하고 이 땅에 내려왔어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들은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해왔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가며 고뇌를 거듭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모순 없는 정확한 학설을 제시하지 못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삶이 끝나면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알려주고 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브리서 11:13~16)


영원 전부터 기쁨과 즐거움만이 가득했던 천국은 장차 하나님의교회,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혼의 ‘진짜 고향’이다.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며 결국 고향을 찾아낸 사루 브리얼리처럼, 아름다웠던 천국의 추억을 그려보자. 그곳으로 돌아갈 기회가 기적처럼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의교회에서 고향을 찾아보세요~


<참고자료>

1. ‘집으로’, 사루 브리얼리 저

2. ‘신비한TV 서프라이즈 746회’, MBC

 

 

 




빌3.20 시민권은 하늘에

옛날에는 미국에 시민권이 있다고 하면 부러움의 대상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도 하늘 시민권이 주어짐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살듯
하늘 시민권 가진 하나님의교회 성도는
하나님의 양식을 먹어야함

벧후1.3ㅡ11 이같이하면 영원한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마13.47 그물에 담겼어도 좋은것만 골라서 그릇에 담아 가심

소돔과 고모라 같이 악한 자들이 많아서

벧후2.4ㅡ8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염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죽어져가는 영혼을 살리는것이 하나님의교회 성도의 의로운 행실

배려 못했던 식구는 배려하고, 전도 못해봤던 식구는 전도해보고...
지금은 준공검사 기간이다!!!
하늘 시민권 가진 하나님의교회 성도는 이제 하늘 갈 준비를 합시다~~~








연어가 자기 고향을 찾아가고 비둘기가 집을 찾아가는 것은 마그네마그네타이트라는 물질을 하나님께서 심어 놓으셨기 때문

렘31.31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히11.15ㅡ16  하늘 본향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반응하는 이유

마13.24ㅡ25 원수가 가라지를 심어놓음

천국의 아들들에게는 좋은씨를 심어놓으심

마13.16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교회 성도가 기억력이 좋아서 새언약을 지키고 있는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  속에 말씀 새언약을 심어놓으셨기때문

마13.11 너희에게는 허락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요10.25ㅡ30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하나님의 말씀인 새언약에 반응하지 않는것은

사29.9ㅡ12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은자에게는 봉한책
유식한자ㅡ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무식한자ㅡ나는 무식하다

세상에서는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자처럼 보이지만 실상 하나님의 뜻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장 기이한 일

아무리 똑똑한 비둘기라도 하나님께서 마그네타이트를 심어 주시지 않는다면 집도 못찾아가는 비둘기가 됨






하나님의교회 성도의 영혼  속에 심어진 말씀 새언약이 궁금하시다면~~~ 하나님의교회로♡





하나님의교회에서 매달 발간되고 있는 엘로히스트는 함께하는 힘을 알게합니다~
전세계에 나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음을 알게되면 새힘을 받게됩니다~




12월호 하나님의교회 엘로히스트의 쉼터에서 바쁜일상을 쉬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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