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sort=d_regis&orderby=desc&uid=4918


대체로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로맨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랑은 한 가지의 유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의 사회학자 존 리는 여러 문학적 자료와 광범위한 면접 자료를 토대로 사랑을 ‘6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유형으로 ‘열정적 사랑(Eros love)’을 제시했다. 주로 이상형을 만났을 때 첫눈에 반하며 연인 간의 불꽃 같은 사랑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유희적 사랑(Ludus love)’을 들었는데 이들은 사랑을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과도 깊이 사랑에 빠지는 법이 없다. 또한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떠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바람을 피워도 쿨하게 눈감아준다.


세 번째는 ‘친구 같은 사랑(Storge love)’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싹트는 타입이다. 친구처럼 오래 사귀면서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사랑이 무르익는다. 갈등이 생길 경우 평화롭게 타협하며 그것 때문에 사랑에 손상이 생기거나 끝나는 예는 드물다.


네 번째는 ‘소유적 사랑(Mania love)’이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상대방을 숨막히게 하는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이들은 의존성과 질투심이 강하며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인을 상대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광신적 사랑이라고도 표현한다.


다섯 번째는 ‘실용적 사랑(Pragma love)’으로 서로의 환경과 배경, 취미 등 현실적 조건을 생각하는 타입이다. 쇼핑목록을 작성하듯 상대의 자질 요건을 구체화하고 또 그런 사람을 선택한다.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마지막 여섯 번째 유형은 ‘헌신적 사랑(Agape love)’이다. 아가페 사랑이라고도 한다. 아무 조건 없이 상대를 좋아하고 돌봐주며 용서하고 베풀어주는 타입니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무한한 사랑을 제공해 준다.

 


위 6가지의 유형 중 최고의 사랑은 단연 헌신적인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용어를 거룩하고 무조건적인 ‘예수님의 사랑’에 빗대어 불렀다고 한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5)


다른 사람을 대신해 선뜻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자는 없을 것이다. 상대가 의롭거나 착하더라도 그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의인도 선인도 아닌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로마서 5:7~8).


인류의 죄는 죽음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셨고 마침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로마서 6:23). 사도 바울은 그러한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에베소서 1:6~7).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로부터 이기적이지 않으며 오직 자기 희생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열심으로 신앙하며 올리사랑을 실천하려고 애를 쓴다. 올리사랑이란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사랑을 나타내는 용어다. 즉 예수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 (요한복음 14: 21)


성경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기록했다. 반면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자’ 혹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자’라고 기록했다(요한일서 2:4). 우리가 예수님께 대한 올리사랑을 실천하려면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친히 알려주시고 본보여 주신 것들이다.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서 성경말씀을 증거하셨고, 유월절 날 제자들과 함께 새 언약의 법도대로 떡과 포도주를 떼셨으며, 초막절에 성령을 받으라고 외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들은 신약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누가복음 4:16, 마태복음 26:17~28, 요한복음 7:2, 14, 37~39).


예수님께 아가페 사랑을 받은 우리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넘어, 이제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켜 올리사랑으로 보답해드려야 할 차례다.


<참고자료>
1. ‘아가페’, 위키백과
2. ‘사랑의 6가지 유형, 당신은 어떤 사랑?’, 시선뉴스, 2016. 9. 24.
3. ‘올리사랑’, 국어사전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909

 

 


최근 어느 한의사의 ‘안아키 치료법’이 시사프로그램에 공개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안아키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뜻이다. 그는 ‘안아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아토피 가진 아이에게 스킨과 로션을 바르지 말고 햇볕을 쬐라”, “화상을 입은 아이에게 뜨거운 물로 찜질해라”, “장염에는 숯가루를 먹여라”, “체온이 40도가 넘어가도 해열제를 먹이지 말라”는 등의 비상식적인 치료지침을 올렸다. 수많은 회원들에게 약 대신 숯가루, 소금물, 간장 등을 사용하라는 정보를 제공했다.


이같은 의학정보(?)에 따라 한 회원은 중이염을 앓는 아이에게 간장을 희석해 비강세척을 시켰다고 한다. 또 한 회원은 진물이 흐르고 심각한 흉터가 생기도록 아이의 아토피를 방치시켰다. 참다 못한 회원의 남편이 언론에 고발하여 아이의 모습이 공개됐는데, 거의 반신실해 있는 상태였다.


한 회원은 “병원의 백신보다 자연 면역된 항체가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글을 게시했다. 안아키에 몰두하고 있는 한 주부는 수두에 걸린 아이를 불러 파티를 여는 일명 ‘수두 파티’를 통해 13개월 된 자신의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수두를 옮기겠다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극단적인 자연주의 치유를 내세워 병원 치료 및 백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아동에게 의료적 처지 없이 방치하거나 민간요법으로 아동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는 아동학대”라고 꼬집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킨 안아키 현상은, 오늘날 종교계에 만연한 영적 안아키를 떠오르게 한다.

이천 년 전, 의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사망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는 인류에게 영생의 처방을 내려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 (요한복음 6:53~55)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인류는 70~80년을 살아가는 동안 즐거움과 고통, 온갖 질병에 따른 괴로움 속에서 허덕인다. 그러다가 사망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른다. 이같은 공식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하늘에서 지은 죄의 대가로 인한 것이라고 기록했다(로마서 6:23). 다행히 인류가 지은 죄는 사면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새 언약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새 언약 유월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유월절을 지키면 이단이라고 비난한다.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영생의 처방을 업신여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태양숭배사상에서 비롯된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며 영생을 바란다. 마치 정상적인 치료를 무시한 채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병을 고치려는 안아키 신봉자들과 같다.


병을 고치려면 정확한 병명에 따른 처방이 필요하다. 화상을 입으면 화상치료를 받아야 하고, 고열은 해열제로 내려야 하며, 아토피는 천식과 비염, 심혈관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죽음이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인류는 ‘새 언약 유월절’로 영생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부디 허무맹랑한 이상한 치료법에 혹하지 말고 참 의원이신 예수님의 처방대로 행하자.


<참고자료>
1. ‘“안아키 사태에 WHO 구성원들도 충격”’, 동아일보, 2017. 6. 26.
 2. ‘무분별한 ‘안아키’를 멈춰주세요.’, 브릿지경제뉴스, 2017. 5. 2.
 3. ‘'안아키', 의료법위반 처벌될듯…아동학대 '무혐의'’, 머니투데이, 2017. 7. 10.
 4. ‘엄마는 왜 안아키가 됐을까’, 동아일보, 2017. 7. 13.
 5. ‘자녀 일부러 수두 걸리게 하는 부모들’, 조선일보, 2016. 9. 23.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무더위를 날려보낼 수 있는 시원한 곳은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다. 무더운 여름을 위한 휴가지로는 뭐니 뭐니 해도 탁 트인 바닷가가 제격일 것이다.


그런데 바다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한 가지 무서운 규칙이 있다. 이름하여 ‘이안류(離岸流)’라는 해류의 규칙이다. 언론을 통해 종종 해안가에 있던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는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빠르게 휩쓸려가는 이안류 때문이다.


파도는 대개 바다에서 해안가로 밀려오지만 이안류는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급하게 흘러나간다. 그래서 ‘역파도’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이안류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꼽을 수 있다. 최근 3년 동안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200여 명이 이안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됐고, 미국에서는 1년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이안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해안가는 뭍에 사는 인간에게는 매우 위험한 자연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 육지가 마치 지옥과 같은 곳이라면 어떨까? 그 육지를 탈출하고 싶은데 감시는 삼엄하고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배도 없는 상황이라면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휩쓸려나가는 이안류야말로 자유를 향한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엉뚱한 발상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안류를 이용해서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을 쳤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빠삐용이다.


빠삐용은 영화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73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작품 ‘빠삐용’은 살인죄의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프랑스의 무기수 앙리 샤리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어로 나비가 빠삐용(papillon)인데, 그의 가슴에 나비 문신이 있어서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빠삐용은 친구 드가와 함께 여러 차례 탈옥을 감행한다. 그때마다 탈옥에 실패했고, 그들은 결국 탈옥이 불가능해 보이는 섬으로 끌려간다. 악마의 섬이라 부르는 섬 근처에는 상어가 우글거리고 파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빠삐용은 끊임없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의 그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해안 절벽에 앉아 섬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자신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규칙’을 발견한다. ‘이안류’가 그것이다.


빠삐용은 파도를 바라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파도가 일곱 번의 주기로 바뀌며, 그중 가장 강한 일곱 번째 파도가 칠 때 그 이안류를 타고 섬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영화는 코코넛 자루를 타고 망망대해로 사라지는 빠삐용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빠삐용은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여생을 자유의 몸으로 살았다. 이 악명 높은 기아나의 감옥도 그를 굴복시키진 못했다.”


빠삐용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견했던 것이 이안류의 규칙이었다. 악마의 섬 쪽으로 늘 거칠게 다가오는 파도 속에서 일곱 번째마다 발생하는 이안류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 규칙에 몸을 실어서 빠삐용은 드디어 악마의 섬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예레미야 31:35~36)

 


낮과 밤과 바다의 파도 치는 것을 규정 즉 규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지구와 달의 인력으로 밀물과 썰물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파도가 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규정이라고 하였고, 또 규례라고 하였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편 119:91)

 


빠삐용이 발견한 이안류의 규칙은 바다를 격동시켜 파도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며 천지의 규례다. 이안류의 규례가 빠삐용에게는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범죄한 천사들의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범하고 이 땅으로 쫓겨났다. 형무소인 이 땅에서 살아가며 인생들은 죄의 사슬을 풀지 못한 채 사망의 두려움에 매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형수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한 육체에는 서서히 질병과 가난과 고독이 깃든다. 사망의 두려움이 조여오는 불안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생들에게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파도에게 규정과 규례를 허락하셨다. 낮과 밤이 번갈아 임하면서 인생들에게는 일자와 연한이라는 규칙이 정해진다. 악마의 섬으로 들이치는 수많은 파도 중에서 특별한 이안류의 규칙이 있었던 것처럼 인생들에게 임하는 많은 일자와 연한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규칙인 일곱째 날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를 규례로서 허락하셨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레위기 26:2~5)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2~14)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향하는 모든 것이 사방으로 막혀있고, 사망이 지배하는 이 외딴 행성 지구에서 하루하루 삶의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절망의 섬으로 들이치던 파도에 그 섬을 탈출할 수 있는 이안류의 규칙이 있었던 것처럼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안식일과 유월절 등의 규례와 법칙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빠삐용은 이안류의 규칙에 몸을 맡겨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일곱째 날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에 우리의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 그 특별한 규례와 법칙이 우리를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나래를 펴는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나는 절기를 지키러 즐거운 몸부림을 치며 나비처럼 날아서 시온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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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pasteve.com/?m=bbs&bid=B2BibleChurchOfGod&uid=4884

 

 

 


인터스텔라를 여행하는 사람들




2014년에 개봉한 ‘인터스텔라’는 한국에서만 천만 관객을 돌파하여 흥행에 성공한 SF 미스터리 장르 영화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전 세계적 식량 부족으로 멸망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다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쿠퍼는 책임감이 투철한 사림이다. 그는 NASA가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는 임무를 맡게 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우주탐사를 떠난다. 생생하게 표현된 고차원의 우주 세계와 차원을 넘나드는 가족사랑 스토리가 재미를 더한다.


영화 제목인 Interstellar(인터스텔라)는 ‘~의 중간의, 사이의’를 뜻하는 접두사 ‘inter-‘와 ‘별의’를 뜻하는 ‘stellar’의 합성어로, ‘항성 간의’라는 뜻이다. 항성은 스스로 타면서 빛을 내는 별이다. 흥미로운 점은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즉 인터스텔라가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도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천사)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에스겔 28:11~14)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해안 도시 중 하나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이미 군사적으로 견고한 성읍을 갖추었고(여호수아 19:29 참조),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인 솔로몬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자를 지원하기도 했다(열왕기상 5:1~6 참조).


두로는 주산물인 자색염료를 비롯하여 재목, 밀, 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주위 국가와 섬나라 등지로 수출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역대상 22:4, 에스겔 27:3, 이사야 23:18 참조). 스가랴 선지자는 두로 사람들이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다’고 기록했을 정도다(스가랴 9:3 참조).


의아한 점은 에스겔 선지자가 경제적인 성공과 명성을 누리고 있던 두로 왕을 위해 슬픈 노래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두로 왕의 엄청난(?) 전(煎) 생애를 알았기 때문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두로 왕의 전 생애에 대해,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 살면서 홍보석, 황보석, 녹주석, 금강석을 비롯한 각종 황금을 몸에 단장했으며 이는 두로 왕이 창조되던 날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여겨볼 점은 두로 왕이 ‘화광석 사이를 왕래했다’는 기록이다. NIV 성경은 이를 ‘you walked among the fiery stones'고 기록했다. 새 번역 성경은 “두로 왕이 불타는 돌들 사이를 드나들었다”고 번역했다. 다시 말해 두로 왕이 전 생애 시절에 불타는 빛을 내는 돌(별)들 사이로 왕래했다는 뜻이다. 스스로 타면서 빛을 내는 별, 즉 인터스텔라를 아무런 제약도 없이 여행했다는 의미다.


하늘의 온전한 천사로서 별과 별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두로 왕은, 공교롭게도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에 쫓겨 내려왔다. 그가 쫓겨 내려온 땅은 다름 아닌 지구다(에스겔 28:17 참조). 성경은 두로 왕이 지구에 쫓겨 내려온 장면에 대해 ‘그를 불타는 돌(별)들 사이에서 추방시켰다’고 기록했다(새번역, 에스겔 28:16).


하늘에서 범죄한 두로 왕은 이제 그곳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버린 처지가 된 것이다. 이 땅으로 추방당한 그의 삶은 부귀영화를 누린 듯했지만 앗수르, 바벨론, 헬라의 공격을 받아 결국 처참히 멸망하고 말았다. 에스겔 선지자는 범죄하여 하늘 고향을 잃어버리고 이 땅의 나그네로 살아가는 두로 왕의 모습을 보고 슬픈 노래를 지었던 것이다.


지나간 성경의 기록은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이다(로마서 15:4 참조). 사도 바울은 두로 왕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가리켜 ‘외국인’ 또는 ‘나그네’라고 증거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히브리서 11:13∼16)


나그네란 자기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무는 사람을 뜻한다. 사도 바울이 이 땅의 사람들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며, 그곳은 바로 별과 별 사이를 마음대로 거닐 수 있는 곳, 하늘나라라고 설명했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2001년 5월, 미국의 억만장자 기업가인 데니스 앤서니 티토가 8일 가까이 우주에 머물며 지구에 귀환한 뒤 밝힌 소감이다. 2002년 4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업가 마크 셔틀워스가 약 200억 원을 지불하여 우주여행을 했다. 2005년 10월에는 미국의 물리학자 글레고리 올슨 박사가, 2006년 9월에는 이란계 미국 여성도 우주여행을 했다. 얼마 전에는 미국 민간 우주선 개발업체인 스페이스X가 2018년에 관광객 2명을 달에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인터스텔라를 자유롭게 여행하길 원한다. 지금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며 끊임없이 우주세계를 연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우주여행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곳이 바로 우리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세계를 우리가 직접 보고 느끼고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우주복과 산소통 등 우주탐사에 필요한 장비 없이는 단 1초도 견딜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런 제약 없이 그곳을 영원히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 26∼28)


두로 왕이 하늘 고향을 잃어버리고 이 땅에 쫓겨 내려온 이유는 죄 때문이다. 우리도 죄를 지어 이 땅에 쫓겨 내려왔다(로마서 6:23, 15:4). 따라서 죄 사함을 받으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비밀은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다. 바로 하나님의교회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우주를 여행하게 될 것이다. 물론 번거로운 우주복과 산소통 없이 말이다. 부디 하나님의교회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지켜 장차 별과 별 사이를 맘껏 왕래하는 우주, 인터스텔라에서 만나길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1. ‘인터스텔라 줄거리 제대로 알고 보면 … 깜짝, 데일리한국, 2014. 11. 18.
 2. ‘항공우주 과학교육’, 한국항공우주연구원
3. ‘스페이스X “2018년 민간인 2명 달 왕복 여행 추진”’, KBSNEWS, 2017. 2. 28.
 4. ‘인터스텔라’보기 전 알아두면 좋을 4가지’, 한겨레, 2014. 11. 14.
 5. ‘2백60억 원짜리 최초 민간우주여행’, 과학동아
6. ‘화광석’, 라이프성경사전
7. ‘두로’, 라이프성경사전

 

 

 

 

 

 

 

 

구속(救贖)은 ‘구원할 구, 속죄할 속’ 자를 써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내는 일을 뜻한다.

누군가를 대신해 값을 치르거나 벌을 받음으로써 구원한다는 의미다.

성경에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며,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어 있다.

 

∙∙∙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 (출애굽기 6:6~7)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대표적인 구속의 사례로는 애굽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주신 역사다.

당시 이스라엘은 4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애굽으로부터 온갖 학대와 핍박을 받으며 서러움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해주시기 위해 놀라운 계획을 진행하셨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어린양의)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1~13)


주전 1498년경 애굽 전역에 통곡과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애굽 왕 바로의 장자에서부터 짐승의 첫 새끼까지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2:29~30).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그동안 이스라엘의 독립을 완강히 거부하던 바로왕이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역사에는 주목할 만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옥과도 같은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장자를 멸하는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기 위해 어린양의 희생을 요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목숨의 대가로 애굽의 끔찍한 압제에서 ‘구속’받을 수 있었다.


구속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류의 구속이 완성된다고 기록했다(로마서 3:24).

구속의 대상이라는 것은 옛적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날 우리도 무엇엔가 억압되어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면 사망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이다. 결국 모든 인류가 사망 죄에 억압되어 죄악 세상에 종살이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로마서 7:24 참조).


인류의 죗값을 대속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사망이라는 형벌이다(로마서 6:23 참조). 그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당하신 십자가 형벌은 심하게 매질한 사람을 말뚝 위에 묶거나 못 박아 두는 방식으로

신체의 극심한 고통과 함께 수치심, 배고픔, 목마름,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잔인한 형벌이다.

여기에는 또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목숨을 내던지셨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채찍에 맞은 고통으로 쇼크를 받아 즉사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세차게 내리치는 채찍의 괴로움을 고스란히 감내하신 예수님께서는 70kg로 추정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에 못박혀 운명하셨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목숨의 대가로 죄와 사망에서 구속받게 된 것이다.


3500년 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된 것은,

죄악 세상에서 종살이하는 인류가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피로 구속될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결국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월절은 ‘종살이’라는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희망의 절기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구속의 방법은 분명하다.

오직 유월절을 지켰던 이스라엘 백성만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운명처럼 떠안고 있는 죄의 종살이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 역시 동일하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며 놀라운 ‘구속’의 역사인 것이다.

구속(救贖),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 나아오세요~


<참고자료>

1.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2. ‘예수를 만나다 –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는 몇 kg이었을까, 중앙일보, 2017. 1. 11.

 

 

 

 

 

 

 

 

 

출처는

https://pasteve.com/?m=bbs&bid=bcircles&uid=4833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라 하면 성경에 관심 없는 비(非)기독교인들조차 십자가의 수난을 먼저 떠올린다. 2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지났지만 예수님의 고통은 ‘인류를 위해 대신 피 흘리신 고결한 희생’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으며, 대가 없는 사랑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과 인류의 구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남긴 약속이란 과연 무엇일까? 2천 년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가 확인해보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유월절을 앞두고, 성경의 기록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백성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환영한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소경과 다리 저는 자들을 고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며, 대제사장들은 물론 장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들의 불법과 외식을 꾸짖으신다.


예수님 등장 후 곤란에 처하게 된 대제사장 무리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에서는 ‘나사렛 이단’을 해하려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계략을 꾸미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즈음,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줄 방책을 의논한다. 예수님을 잡을 방법을 고심하던 그들은 기뻐하며 유다에게 은전 30냥을 건넨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이들에게 넘겨줄 기회를 엿본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든 예수의 거처를 알면 고하여 잡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수난 전의 만찬


 유월절 당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지킬 장소를 예비하라고 명하신다. 말씀하신 대로 한 다락방에 자리가 마련되고, 저물녘에 이르러 예수님이 그리로 향하신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시며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모두 둘러앉은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이것은 내 몸이요 이 잔은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는 말씀과 함께.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사랑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이 배신할 것과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미리 알리신다. 주를 위해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했다고 호언장담하는 베드로에게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가장 처절한 고난을 앞둔 순간, 예수님은 철저히 고립되고 있었다.

 

고난의 시작


 예수님은 제자 몇 명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기신다. 잠시 후 닥칠 고난에 고민하시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들어 깨어날 줄 몰랐다.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된다.


같은 시각,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 들이 파송한 큰 무리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다다른다. 유다는 자신이 먼저 입 맞추는 자를 잡으라고 군사들과 사전에 군호를 짜놓은 상황이었다. 각본대로 유다가 예수님께 나아가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하고 입을 맞추자 무리가 예수님을 사로잡는다. 제자 중 하나가 급히 검을 빼서 맞서지만 예수님이 만류하신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친다. 군대와 유대인 하속들은 예수님을 결박해 가야바의 장인이자 대제사장 중 하나인 안나스에게 끌고 간다. 심문을 마친 안나스는 예수님을 가야바에게로 보낸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는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하던 중,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말하라”는 대제사장의 추궁에 예수님이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라고 답하신다. 대제사장이 옷을 찢으며 소리친다.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증인을 더 요구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다!”


무리는 “사형에 해당한다”며 맞장구친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한다.

 

“다 이루었다”


새벽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관정으로 끌고 가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다”며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고소한다.


당시 유대 사회는 자치적인 사법제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형 집행권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총독의 승인이 필요했다.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하고 예수님을 돌려보내려 하지만 무리는 “갈릴리에서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가르치고 선동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빌라도가 유월절에 죄인 한 명을 풀어주는 전례에 따라 예수님과 죄수 바라바 중 누구를 풀어줄지 유대인들에게 묻는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민란 때의 살인죄로 붙잡힌 죄수였다.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죄 없는 예수님 대신 극악무도한 살인자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한다. 예수님을 놓아주려 애쓰던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격앙된 반응에 두려움을 느끼며 결국 예수님을 재판석에 앉힌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대인들의 요구는 그칠 줄 모른다. 이유를 물어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더욱 크게 고함칠 뿐이다. 민란이 날 듯하자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외친다. 백성들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친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다. 군병들은 가시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조롱하며 침 뱉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갈대로 머리를 친다. 희롱을 끝낸 병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다시 예수님을 끌고 간다.


오전 9시경,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십자가는 중죄인을 다스릴 때 사용되던 사형 도구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십자가형을 가리켜 ‘죄인을 공개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고안한 가장 끔찍한 죽음’이라 표현했다. 영국의 유대계 작가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열사병, 굶주림, 질식, 충격, 갈증을 통한 느린 죽음’이라 기록했다.


극심한 통증이 예수님을 서서히 옥죈다. 행인들은 고통에 신음하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며 모욕한다. 대제사장들도 무리와 함께 “저가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할 수 없구나.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조롱한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진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내가 목마르다”고 이르신다.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댔다. 이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 하시고 비로소 머리를 숙이신다.

 

예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비밀, 새 언약


 언뜻 보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으므로 구원의 계획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은 우연도 아니고 정황상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도 아니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보여주신 하나하나의 과정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었던 구원의 경륜이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라는 말씀의 성취였다.


유월절에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것은 내 살과 피”라고 언급하신 것에도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이 역시 구약의 역사와 예언을 따른 것이다. 출애굽 당시 지킨 최초의 유월절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예식이 있었다. 이를 행한 백성들은 어린양의 희생을 힘입어 재앙을 면하고 400여 년간 종살이했던 애굽에서 해방받았다. 이 같은 역사를 따라 이 땅에 ‘어린양’(요한복음 1:29)으로 임하신 예수님은 인류를 속박하는 죄와 사망의 사슬을 끊으시려 자신의 피에 죄 사함과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바로 새 언약이다(누가복음 22:19~20).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의 피 흘리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때로부터 2천여 년이 지났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에 빼곡히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패배가 아닌 승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혈로써 맺어주신 새 언약의 유월절은 알지 못한다. 폐지되어버린 율법이라 치부하기도 하고, 진짜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행위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에서 2천 년 전 유대인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너희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려야 하는 십자가 고통을 참아내겠다’는 다짐과 의지가 깃들어 있다. 예수님의 가없는 사랑과 희생에 감복하면서도 유월절에 담긴 축복과 구원을 간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인상 깊게 보면서도 유월절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의 간곡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참고자료>
『예루살렘 전기』(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著)

 

 

 

 

 

 


생명을 나누는 헌혈, 환자에게도 기증자에게도 좋다

 


헌혈이란 혈액의 성분 중 한 가지 이상이 부족하여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는 다른 사람을 위해,

건강한 사람이 자유의사에 따라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는 사랑의 실천이자,

 생명을 나누는 고귀한 행동입니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헌혈에 대해 홈페이지에서 위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많은 봉사활동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명을 나누는 헌혈은 너무나도 중요하고도 고귀한 봉사라고 할 수 있겠다.

혈액은 아직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고, 대체할 물질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헌혈이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헌혈한 혈액은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고(혈소판의 경우 5일),

현재 의약품의 원재료가 되는 혈장성분의 경우는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헌혈 참여가 필요하다.

수입 없이 혈액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연간 약 300만 명의 헌혈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헌혈은 전혈헌혈과 성분헌혈로 나뉘는데, 전혈헌혈은 혈액 성분을 모두 채혈하는 것으로 나이나 성별, 몸무에 등에 따라서 320, 400ml을 헌혈한다.

성분헌혈은 혈액의 특정 성분만을 채취하는 것으로 혈소판, 혈장, 혈소판혈장 성분을 각각 채혈하고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되돌려 주는 방식이다.

사람은 평소에 15% 정도의 혈액을 여유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헌혈로 소실 된 혈액은 충분한 휴식만으로도 회복되어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헌혈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소실 된 회복을 회복하는데 전혈은 650kcal, 혈장 470kcal 정도를 소모한다고 하며,

 헌혈 후에는 혈액을 검사하여 그 결과를 우편으로 발송해주기도 하니 간단한 건강 체크에도 좋다.

혈액형, B형간염 항원, C형간염 항체, ALT, 매독항체, HIV 검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유월절 사랑 생명 사랑 전 세계 헌혈 릴레이

 

현재 전 세계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에서 ‘유월절 사랑 생명 사랑 전 세계 헌혈 릴레이‘가 진행되고 있다.

필자도 최근에 직장 근처의 하나님의교회에서 참여했었는데, 아쉽게도 기준에 맞지 않아 헌혈을 하지는 못했지만 뜻 깊은 경험이었다.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기증자의 건강이 중요하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여유가 있는지, 최근에 해외나 위험 지역에 여행을 다녀온 적은 없는지, 약을 먹었거나 치료를 받았던 적은 없었는지를 체크한다.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혈 릴레이가 매년 이 맘쯤 진행되다 보니 교회 성도들은 헌혈 행사 일정이 정해지기 전부터 헌혈을 위해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나님의교회가 헌혈 봉사활동에 ‘유월절 사랑 생명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교회가 지키고 있는 새 언약 유월절은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세우신 생명의 절기이다.

하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과 같이 성도들도 작지만 자신의 피로 타인의 생명에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겉보기에는 나 자신만 희생하는 걸로 생각될 수 있지만 나아가서는 나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는 활동이 헌혈이다.

더불어 유월절 진리도 나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서 함께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이 하나님의교회 성도들 모두의 꿈이다.

헌혈릴레이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국을 넘어 미국, 뉴질랜드, 필리핀, 네팔, 페루 등 전 세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유월절 생명의 릴레이는 계속 될 것이다.

 

 

 

 


 

 

 

 

 

 

출처는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170319010006775

 

19일, 이천시 증포동 일대가 깨끗하게 변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이하 하나님의 교회)가 '유월절 기념 환경정화운동'를 펼친 덕분이다.

교회 관계자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진리인 새 언약 유월절로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삶의 터전인 지구 환경을 깨끗하게 정화하여 이웃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선물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날 이천과 여주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과 그 가족, 친구, 이웃 등 250여명이 증포사거리, 이마트사거리, 증포동교차로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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