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마타도어

 

붉은 천을 휘두르는 투우사의 현란한 손놀림에 황소는 흥분한다. 돌진하는 황소의 등에는 여러 개의 창이 꽂힌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개의 창. 예리한 칼날이 황소의 정수리를 찌르자 사납던 소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스페인의 국기(國技) 투우다.

투우를 에스파냐어로 마타도르(Matador)라고 한다. 이 단어에서 유래된 마타도어는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방을 중상 모략하는 흑색선전(black propaganda)을 뜻한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마타도어는 근거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카더라 통신’을 타고 마구잡이로 뿌려지는 마타도어는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힌다.

마타도어에 당한 사람은 그 내용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마타도어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유포되다 보니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해명을 하는 당사자만 치졸해보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는 수많은 마타도어가 떠돌아다닌다.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어른들의 크고 작은 모임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SNS를 통해 개인, 기업인, 정치인 등에 관한 가짜 뉴스와 혐오발언들이 수없이 쏟아진다. 한 화장품 회사의 기업 대표는 “우리 제품을 사용한 후 하혈을 했다는 괴소문이 인스타그램에 퍼졌다”며 “그들은 절대 잡히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괴담을 퍼트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실 여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이 같은 루머들은 많은 사람에게 사실인 양 각인된다.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당사자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난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종교적 마타도어

 


종교인의 마타도어 역시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종교적 마타도어는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기록했다(출애굽기 20:8). 2천 년 전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을 지키시며 본을 보이셨다(누가복음 4:16, 요한복음 13:15). 사도들도 그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준행했다(사도행전 17:2, 18:4).

반면 일요일 예배는 성경에 없다. 사람이 만든 사람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된 신앙경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의 계명을 지켜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복음 15:9). 성경에 없는 것을 가르치는 목사의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교리 대신 엉뚱한 것을 겨냥한다. 바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인성(人性)이다.

 

 


하나님의 인성을 겨냥한 마타도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태복음 11:18~1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한복음 10:30~33)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 복음을 전파하시며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유대교인들을 꾸짖으셨다. 이때 교리적으로 도저히 예수님을 당할 수 없었던 유대교인들이 고안해낸 것이 바로 마타도어였다.

마타도어의 목적이 흠집 내기인 만큼 그들은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으로 낙인찍어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말이다(사도행전 24:5, 누가복음 23:21). 그러나 진리는 마타도어에 의해 바뀌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자신들의 손으로 하나님을 못 박은 그들의 행위는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다.

오늘날 성령시대,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던 새 언약 진리를 다시 알려주시기 위해 사람 되어 이 땅에 두 번째 오셨다(히브리서 9:28, 이사야 25:6~9, 요한계시록 3:20).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며 배척한다. 애초에 성경을 통해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재림 예수님에 대한 온갖 거짓 소문과 악성 루머를 퍼뜨린다. 2천 년 전 유대인의 모습과 동일하다.

영적 마타도어에 빠지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고도 ‘멸망’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지 않으려면 신앙의 중심을 오직 성경에 두어야만 한다.

 

<참고자료>
‘그들만의 위험한 축제, 까판을 아시나요?’, 이코노믹리뷰, 2018. 8. 7.

 

출처는 https://pasteve.com/matador/

 

 

 


사해사본

 

사해사본(死海寫本, Dead Sea Scrolls)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약 필사본이다. 여러 보도에 의하면 사해 두루마리는 깨알같이 쓰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기원전에 작성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눈여겨볼 점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이사야서」가 현대 구약성경의 내용과 완벽한 일치를 보인 것인데, 무려 2천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성경의 기록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성경의 역사와 구원을 이끄시는 존재가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해사본이 기독교와 유대교 등에 종교적, 역사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자, 최근 돈벌이 수단으로 문서를 위조한 누군가에 의해 가짜 사해문서가 시중에 떠돌아다녀 주의를 요하고 있다.

어쨌든 세간에 이목을 집중시킨 사해사본은 초대교회 시대 이전부터 구약성경(두루마리)이 실존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고고학 분야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로 평가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해사본보다 더 경이로운 발견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엘리트 계층으로 누려야 할 사회적 신분, 권위, 특권을 배설물로 치부할 만큼, 그것을 아주 고귀한 발견이라고 설명했다(빌립보서 3:4~9). 과연 그 위대한 발견은 무엇일까?


 

 



사해사본보다 귀중한 발견

 


동굴 속에 숨겨져 있던 고문서를 발견한 것이 대단한 일일까, 아니면 그 속에 새겨진 구원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대단한 일일까.

사해사본은 성경이라는 ‘책’을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책’보다 성경에 감춰진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다.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공동번역 요한복음 4:10~14)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예수님은 다름 아닌 인류의 영적 갈증을 해결해 주실 하나님이셨다. 이를 깨닫고 예수님께 물을 구하는 자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신비한 생수, 곧 영생의 선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생명수를 주시는 하나님을 앞에 두고 알아보지 못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본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 이 역사는 오늘날 전 세계 인류를 향해 “생명수를 받으러 오라”고 부르시는 성령과 신부의 애절하고도 애타는 마음을 잘 대변해 준다.

1947년 쿰란의 목동들이 보물을 발견하리라는 기대감으로 동굴을 탐사했던 것처럼, 우리도 가슴 벅찬 설렘으로 성경을 살피어 찾아보자. 그러면 성령시대의 가장 큰 비밀이신 하나님의교회 성령과 신부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보물인 우리의 구원자를 말이다.

 


 

 

<참고자료>
1. ‘세계 가장 오래된 성경 ‘사해사본’ 첫 공개’, KBS뉴스, 2007. 12. 5.
2. 이나바 요시아키, 『부활하는 보물』, 도서출판 들녘(2002).
3.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 ‘사해문서’ 동굴 또 발견…12번째’, 연합뉴스, 2017. 2. 10.
4. ‘”사해(死海) 문서 유물 중 5조각은 모조품…전시 중단”’, 매일경제, 2018. 10. 23.

출처는 https://pasteve.com/dead-sea-scrolls/

 

어려서부터 소풍이 기다려졌던 여러가지 이유중 한가지는 보물찾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보물을 찾아본 기억이 없기에 어느 순간 흥미를 잃게 되었는데

결국 보물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 하나님의교회에서~~~

 

 


 

바이런의 보물책

바이런 프레이스(Byron Preiss). 그는 미국의 무명작가다. 출판사를 차렸지만 적자가 계속되자 한가지 흥미로운 묘책을 냈다. 미국 전역 12곳에 열쇠를 숨긴 것이다. 이는 바이런 프레이스의 개인금고를 열 수 있는 ‘금고열쇠’로 이를 모두 찾으면 1억 2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괴를 얻을 수 있다. 단, 그가 출판한 책 《더 시크릿 보물사냥》(The Secret: Treasure hunt)을 읽어야만 보물열쇠가 숨겨진 장소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982년에 출판된 《더 시크릿 보물사냥》에는 12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국 옷을 입고 있는 여인, 울고 있는 사자, 중세시대 갑옷, 성배를 든 켄타우로스, 성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 돌기둥 위의 말 탄 아랍인, 시계와 가면을 든 손, 아라비안나이트의 지니를 떠올리게 하는 매부리코 노인, 안개 속의 성과 마술사, 보석함을 들고 있는 여인, 바다 위에 우뚝 선 예수를 소재로 한 그림이었다.

바이런은 이 책을 발간하며 “12점의 그림 속에 개인금고 열쇠 12개가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는 힌트가 들어 있다”며 “한 개의 금고당 천만 원이 넘는 보물이 들어 있고, 열쇠는 상자 안에 밀봉하여 땅속 1미터 이내에, 고속도로나 철로, 절벽 같은 위험한 곳이 아닌 안전한 장소에 묻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이 상술이라며 믿지 않았고, 바이런의 보물책은 초판 2만 8천여 권이 팔리는 데 그치고 말았다.

 

 

 

보물열쇠를 찾은 사람들


이듬해인 1983년,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에 사는 두 청년이 우연히 이 책을 보고는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12점의 그림 중 ‘성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의 많은 부분이 시카고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리노이 주 지도, 시카고 시내에 세워진 인디언 동상, 시카고 워터타워, 호수의 분수 조형물 등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림 속 풍차 날개에 새겨진 41, 42, 87, 88이라는 숫자가 위도와 경도라고 추정하고 위도 41.8, 경도 87.8인 그랜드파크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림 속에 있는 성벽 기둥과 똑같은 기둥을 발견하고는 땅을 파보았다. 놀랍게도 1미터가 안 되는 얕은 땅속에서 상자가 발견되었고, 상자를 열자 고이 밀봉된 보물열쇠가 보관돼 있었다. 바이런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1983년 9월 8일자 시카고트리뷴에 대서특필되었다. 이후 바이런의 보물책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람들은 나머지 11점의 그림을 놓고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다. ‘중국 옷을 입고 있는 여인’에 대해서는 “옷의 문양이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비슷하다”, “옷에 숨겨진 알파벳 G와 H는 샌프란시스코의 쇼핑몰 기라델리 스퀘어 같다”고 추정했고, ‘보석함을 들고 있는 마녀’를 놓고는 “마녀의 머리카락이 보스턴항 지도와 비슷하다”, “옷의 무늬는 보스턴 백페이펜즈공원 조형물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이상 보물열쇠를 발견했다는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2004년, 두 번째 보물열쇠를 찾았다는 주인공이 나타났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사는 변호사였다. 그는 ‘성배를 든 켄타우로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그림에는 오하이오 주 지도, 클리블랜드의 터미널타워, 이탈리아 문화정원의 건축물 등이 그려져 있었고, 켄타우로스가 들고 있는 성배가 이탈리아 문화정원의 분수라고 추정하고 분수 근처를 파본 결과 보물열쇠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물책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13:44)

하나님께서는 천국이 밭에 감춰둔 보물과 같다고 하셨다. 비유 속 주인공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밭을 통째로 구입했다. 그저 밭 한 뙈기를 얻기 위해 전 재산을 판 것이 아니라, 밭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가치의 보물 때문이다. 그만큼 천국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비유 속 주인공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이처럼 애쓰는 것은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골로새서 2:2~3)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위해 애쓴 이유는, 그 안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밭에 감춰둔 보물, 천국을 얻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구원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5)

성경은 그리스도, 즉 구원자에 대해 증거하는 책으로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에 대해 깨달을 수 있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라야 비로소 천국이라는 보물이 내 것이 된다.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942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튼’이 발표한 역사극「리슐리외 추기경」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리슐리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 때 재상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이다. 희극 속 리슐리외는 적들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침착한 목소리로 하인에게 “펜은 칼보다 강하네. 칼을 치우게. 국가는 칼 없이도 구할 수 있네.”라는 대사를 읊었다고 한다.


이 표현은 당시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져갔고, 오늘날에는 영국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케임브리지 딕셔너리즈는 “이 말이 ‘사상과 저술은 무력이나 폭력보다 사람들과 사건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즉 사고∙ 언론∙ 저술∙ 정보의 전달은 직접적인 폭력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펜 끝에서 생기는 힘은 작가의 이데올로기와 깊이 연결된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작가가 가진 사상과 이념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짧은 글귀라도 그 속에는 작가의 신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인 저항시인이 있다. 윤동주다. 그는 우리나라의 비참한 현실에도 절망하지 않고 ‘펜’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쳤다. 그가 남긴「서시」,「참회록」,「길」,「별 헤는 밤」등의 작품에는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번뇌와 고민, 울분, 자책 그리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한 신념과 소망이 짙게 담겨있다.


윤동주 시인은 안중근, 윤봉길 의사처럼 어떤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항일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작품으로 당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펜’을 통해 조국독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오늘날 그가 강인한 의지를 지닌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처럼 한 작품 한 작품 속에는 작가의 사상과 정신이 오롯이 들어있다. 전 세계인의 사상과 시대정신을 초월하여 오랜 시간 동안 스테디셀러의 자리에서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 있다. ‘인류 구원’이라는 이념으로 일관되게 써내려간 책, 성경이다. B.C. 1500년경 모세에 의해 기록된 창세기를 시작으로 A.D. 96년경 요한에 의해 기록된 요한계시록까지, 무려 16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왕조를 거치면서 수많은 기자들의 손을 빌어 기록되었다.


오랜 세월, 격동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 성경의 원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인류 구원’이라는 중심생각을 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의 의지를 더욱 분명히 보여주셨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을 직접 이루시면서까지 당신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마태복음 26:52~54)


성자시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고난을 피하기 위해 생명을 구걸하거나 세상에 무릎 꿇지 않으셨다. 만약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칼에 힘을 빌리셨거나, 천사들의 힘을 요구하여 죽음의 상황을 모면하셨다면, 오늘날 인류의 죄 사함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 그대로 당신의 피를 흘려 목숨을 내놓으셨다(에베소서 1:7). 예수님의 이같은 결연한 의지는 성경의 기록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 세계 3분의 1인 약 24억 명이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는 펜 끝에서 기록된 글이 거짓되지 않고 진실하여,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죽음의 길로 가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힘을 가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펜을 가지신 분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펜은 칼보다 강하다” 출처는 19세기 영국 희곡’, 연합뉴스, 2015. 1. 9.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933

 

하나님을 신앙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중 있는 믿음의 요소는 ‘연단’이라 할 수 있다. 연단은 믿음을 성숙하게 하고, 천국을 소망하게 하며, 선악을 분별하게 한다. 이러한 유익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고난과 환난 또는 징계로 이뤄지는 연단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연단은 단순히 ‘어떤 물질을 정제한다’는 의미만 내포하지 않는다. 히브리 원어에서는 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연단의 어원 ‘자카크’는 ‘씻는다’, ‘거른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같은 낱말로 쓰이는 히브리어 ‘차라프’는 ‘불순물을 제거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소망하는 것 외에는 마음에서 걸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주목할 점은, 믿음의 연단에 앞서 먼저 실행해야 하는 연단이 있다. 바로 ‘진리의 연단’이다. 세상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교회들, 무수히 많은 교리들, 수두룩한 신학서적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가짜 교리 즉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 진리적 연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진리적 연단의 기준은 단연 성경이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다니엘 12:10)


진리의 연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정결케 된 사람들이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악한 자들도 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악’은 절대적으로 걸러내야 하는 불순물에 속한다. 그렇다면 악에 속한 불순물과 같은 거짓 교리는 무엇일까.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느헤미야 13:17)


성경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가리켜 ‘악’이라고 표현했다. 즉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악한 자의 범주에 속하여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대다수의 교회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에 없는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다. 일요일 예배는 A.D. 321년 로마 황제가 ‘태양신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기독교대백과사전 참조).


성경에 기인하지 않은 예배를 지키는 것은 교리적 불순물을 첨가하는 행위다. 거짓교리를 바탕으로 아무리 믿음의 연단을 거친다 한들 그것이 구원을 주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나무에서 포도송이를 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7:16). 잘못된 예배를 지키는 자들은 절대 ‘천국’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제정해주신 안식일을 비롯한 새 언약 절기들을 지키면서 이뤄지는 연단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연단’인 것이다.


<참고자료>
‘연단’, 라이프성경사전

 

 

 

 

 

 

 

 

 

 

고발 방송의 함정

최근 먹거리 고발 방송에서 대왕 카스테라에 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제작진은 세 곳의 매장에 잠입해서 대왕 카스테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취재했는데, 매장에서 카스테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가 매우 좋지 않다고 방송에 내보냈다. 생 달걀이 아닌 보존 기한이 긴 액상 달걀을 사용한다거나, 버터가 아닌 식용유를 대량 사용한다거나 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은 마치 식용유나 액상 달걀을 사용해서 만든 카스테라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인 것처럼 이야기 했다.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대왕 카스테라를 찾는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한 매장 주인은 방송 후에 매상이 90% 가까이 떨어져서 오히려 장사를 하는 것이 손해라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인터넷에는 해당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아르바이트생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왔고, 실제 매장 앞에 ‘좋은 재료를 가지고 양심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문구를 써 붙인 곳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마음은 돌아섰고, 지금은 지역 곳곳의 매장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방송에서는 빵을 만들때 식용유를 사용하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재료들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액상 달걀 역시 껍질이나 위생 적인 면에서 생 달걀보다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비양심 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은 일부일 뿐인데, 방송은 모든 매장이 좋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이 방송은 예전에도 여러 업종을 다루었고 문제 삼았는데, 이 때문에 업종 자체가 흔들리거나 무너진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말로는 고발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업주까지 위협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 될 것이다.

 

오해 받는 예수님과 초대 하나님의교회?

 

방송이라 해서 모두가 사실이고 정답은 아니다. 악의적인 편집에 의해서 부풀려지거나 왜곡 되는 경우도 많다. 당하는 사람은 억울하지만 아무리 하소연해봐도 이미 사람들은 떠난 뒤다. 이런 악의적인 소문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하지만 나쁜 말일 수록 더욱 빨리 퍼지기 마련이다.

이천 년 전 예수님도, 그를 따랐던 초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도 당시에는 억울한 누명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하며 핍박하였고, 부활하신 것에 대해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에 더 집중하였을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새 언약 유월절 예식에 대해서 ‘식인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이다. 단지 성경의 말씀 따라 행했던 내용들이 다른 사람들은 악의적인 소문만을 듣고 제멋대로 판단했던 것이다.


(마태복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이 오해가 없는 사실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혹시 다른 사람들의 악의적인 소문을 듣고 편견을 가지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마찬가지로 참 하나님을 찾는 과정에서 온갖 악의적인 비방이 가득하다. 예수님 때와 똑같이 사람이라 비방하고, 자신들과 다르다고 비방하며, 성경을 본다고 비방한다. 오해하는 시선을 사실인 것처럼 주장한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애려면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팩트‘를 확인하고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에서 팩트를 확인하려면 성경을 보면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그대로 성경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팩트, 성경을 통해 올바른 길을 찾아 나아가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사해 연안에 쿰란이라는 구릉지대가 있다. 1947년 어느 목동이 이곳에서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양을 찾아 헤매던 목동은 협곡의 바위 절벽에 있는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동굴이었다. 목동은 혹시 그곳에 잃어버린 양이 있을까 하여 동굴 안으로 돌멩이를 던졌다. 양을 놀라게 해서 뛰쳐나오게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동굴 안에서 들려온 건 양 울음소리가 아니라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예루살렘 근방은 고대부터 이어진 역사 속에 많은 유물이 잠자고 있었다. 목동은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벅찼다. 그리고 다음 날 사촌과 동행하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깨진 항아리를 포함해 모두 아홉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두 소년은 항아리 속에 누군가 숨겨둔 보물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모두 비어 있었다. 그리고 한 항아리 속에서 보물이 아닌 열한 뭉치의 양피지 두루마리들만 건졌을 뿐이다.


그들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푼돈을 받고 중고품 상인에게 팔았다. 중고품 상인은 히브리대학교와 그리스정교회 어느 수도원의 주교에게 나눠서 팔아넘겼다. 그들이 헐값에 팔아버린 두루마리 뭉치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독교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해사본’이다.


사해사본은 BC 1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됐다.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AD 900년경의 맛소라사본이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이었다. 사해사본은 그보다 무려 1000년이나 오래된 것으로, 성경학자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구약성경과 완벽하게 일치하여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성경학자들은 “사해사본의 발견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이 실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해사본은 발견 당시에는 가치를 몰라 푼돈에 여기저기 팔렸지만 중요성을 인지한 사람들에 의해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사해사본은 모든 종교계를 뒤흔들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크나큰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또한 ‘20세기의 귀중한 발견’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성서고고학 분야의 빛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라는 ‘책’을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책’보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책의 역사와 진위를 따지기보다 성경 속에 새겨진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의 계명들을 올바로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동굴 속에 숨겨져 있던 고문서를 발견한 것이 대단한 일일까, 성경 속에 감춰진 비밀 중의 비밀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대단한 일일까.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3:9)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1:27)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로새서 2:2)


쿰란의 목동들이 보물을 발견하리라는 기대감으로 동굴을 탐사했던 것처럼 가슴 벅찬 설렘으로 성경을 탐색해보자.

그러면 하나님의교회 성령시대 구원자, 성령과 신부이신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보물인 우리의 구원자들을 말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참고자료>

1. ‘부활하는 보물’, 들녘

2. ‘사해사본’, 교회용어사전

3. ‘성서 속의 불가사의’, 동아출판사

 

출처는
https://pasteve.com/?m=bbs&bid=bcircles&sort=d_regis&orderby=desc&uid=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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