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교회 성도를 제외하고

너도나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미명 아래,

해마다 12월 25일만 되면 시끌벅적하게 치러지는 크리스마스가

성경에 기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아보셔야하지 않을까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배경에 관해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태와 누가만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마저도 정확한 날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 예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탄생 드라마가 펼쳐진 2천 년 전 그 역사 속을 알아보세요~

 

https://pasteve.com/the-birth-of-jesus-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탄생 스토리(pasteve)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탄생 스토리(pasteve)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미명 아래 해마다 12월 25일만 되면 시끌벅적하게 크리스마스가 치러진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배경에 관해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마태와 누가만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마저도 정확한 날짜는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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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새 이름, 안상홍님

 

 

A.D. 96년경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놀라운 계시들을 보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증거하신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요한계시록 1:1~2). 그 중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마지막 시대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새 이름에 대한 기록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돌 위에 기록된 새 이름은 유명한 목사나 신학자라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경의 예언을 믿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요구된다(요한복음 5:39).

 


 

 


귀 있는 자와 없는 자

 

사도 요한은 귀 있는 사람에게 성령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보라고 권했다. 귀 없는 사람은 들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요한이 말한 귀는 단순히 외이·중이·내이로 구별된 청각 기관이 아닌, 그리스도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가리킨 것이다.

외형상 멀쩡한 두 귀가 있고 청력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거나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귀 없는 자’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할례받지 못한 귀’라고도 표현했다(예레미야 6:10~15).

 


 


돌의 의미

 

새 이름이 기록된 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베드로전서 2:4~8)

흰 돌, 산 돌, 모퉁이 돌, 부딪히는 돌, 머릿돌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비유한다. 결국 돌 위의 새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이름, 즉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두 번째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받는 자만 아는 새 이름, 안상홍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다고 예언했다(이사야 7:14, 9:6~7). 약 700년 후 예언은 성취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새 이름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등장하신 것이다(마태복음 1:18~23).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믿노라 했던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참람한 말을 내뱉었고, 조롱하며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했다. 급기야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마태복음 26:65~68, 27:27~44).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두 번째 나타나신다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구원자에 대한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등으로 인해 넘어지고 비방하고 배척할 것이다.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영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천 년 전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성경의 예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재림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으며, 새 이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구원자의 이름은 인류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위력이 있다. 성부시대 믿음의 선진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고, 성자시대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 성령시대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인류의 구원과 죄 사함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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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새 이름 안상홍 님 - AD 96년경 요한이 본 그리스도 새로운 이름

그리스도의 새 이름 안상홍 님 - A.D. 96년경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놀라운 계시들을 보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증거하신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요한계시록 1:1~2). 그 중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마지막 시대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새 이름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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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소풍이 기다려졌던 여러가지 이유중 한가지는 보물찾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보물을 찾아본 기억이 없기에 어느 순간 흥미를 잃게 되었는데

결국 보물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 하나님의교회에서~~~

 

 


 

바이런의 보물책

바이런 프레이스(Byron Preiss). 그는 미국의 무명작가다. 출판사를 차렸지만 적자가 계속되자 한가지 흥미로운 묘책을 냈다. 미국 전역 12곳에 열쇠를 숨긴 것이다. 이는 바이런 프레이스의 개인금고를 열 수 있는 ‘금고열쇠’로 이를 모두 찾으면 1억 2000만 원에 해당하는 금괴를 얻을 수 있다. 단, 그가 출판한 책 《더 시크릿 보물사냥》(The Secret: Treasure hunt)을 읽어야만 보물열쇠가 숨겨진 장소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982년에 출판된 《더 시크릿 보물사냥》에는 12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국 옷을 입고 있는 여인, 울고 있는 사자, 중세시대 갑옷, 성배를 든 켄타우로스, 성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 돌기둥 위의 말 탄 아랍인, 시계와 가면을 든 손, 아라비안나이트의 지니를 떠올리게 하는 매부리코 노인, 안개 속의 성과 마술사, 보석함을 들고 있는 여인, 바다 위에 우뚝 선 예수를 소재로 한 그림이었다.

바이런은 이 책을 발간하며 “12점의 그림 속에 개인금고 열쇠 12개가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는 힌트가 들어 있다”며 “한 개의 금고당 천만 원이 넘는 보물이 들어 있고, 열쇠는 상자 안에 밀봉하여 땅속 1미터 이내에, 고속도로나 철로, 절벽 같은 위험한 곳이 아닌 안전한 장소에 묻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이 상술이라며 믿지 않았고, 바이런의 보물책은 초판 2만 8천여 권이 팔리는 데 그치고 말았다.

 

 

 

보물열쇠를 찾은 사람들


이듬해인 1983년,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에 사는 두 청년이 우연히 이 책을 보고는 호기심을 갖고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12점의 그림 중 ‘성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의 많은 부분이 시카고와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리노이 주 지도, 시카고 시내에 세워진 인디언 동상, 시카고 워터타워, 호수의 분수 조형물 등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림 속 풍차 날개에 새겨진 41, 42, 87, 88이라는 숫자가 위도와 경도라고 추정하고 위도 41.8, 경도 87.8인 그랜드파크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림 속에 있는 성벽 기둥과 똑같은 기둥을 발견하고는 땅을 파보았다. 놀랍게도 1미터가 안 되는 얕은 땅속에서 상자가 발견되었고, 상자를 열자 고이 밀봉된 보물열쇠가 보관돼 있었다. 바이런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1983년 9월 8일자 시카고트리뷴에 대서특필되었다. 이후 바이런의 보물책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람들은 나머지 11점의 그림을 놓고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다. ‘중국 옷을 입고 있는 여인’에 대해서는 “옷의 문양이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비슷하다”, “옷에 숨겨진 알파벳 G와 H는 샌프란시스코의 쇼핑몰 기라델리 스퀘어 같다”고 추정했고, ‘보석함을 들고 있는 마녀’를 놓고는 “마녀의 머리카락이 보스턴항 지도와 비슷하다”, “옷의 무늬는 보스턴 백페이펜즈공원 조형물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이상 보물열쇠를 발견했다는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2004년, 두 번째 보물열쇠를 찾았다는 주인공이 나타났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사는 변호사였다. 그는 ‘성배를 든 켄타우로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그림에는 오하이오 주 지도, 클리블랜드의 터미널타워, 이탈리아 문화정원의 건축물 등이 그려져 있었고, 켄타우로스가 들고 있는 성배가 이탈리아 문화정원의 분수라고 추정하고 분수 근처를 파본 결과 보물열쇠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물책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13:44)

하나님께서는 천국이 밭에 감춰둔 보물과 같다고 하셨다. 비유 속 주인공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밭을 통째로 구입했다. 그저 밭 한 뙈기를 얻기 위해 전 재산을 판 것이 아니라, 밭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가치의 보물 때문이다. 그만큼 천국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비유 속 주인공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이처럼 애쓰는 것은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현대인의성경 골로새서 2:2~3)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위해 애쓴 이유는, 그 안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밭에 감춰둔 보물, 천국을 얻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구원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5)

성경은 그리스도, 즉 구원자에 대해 증거하는 책으로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에 대해 깨달을 수 있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라야 비로소 천국이라는 보물이 내 것이 된다.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937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20대 남성이 야생 진드기에 물려 사망했다. 그동안 면역력이 약한 노인 사망자만 발생했는데 젊은이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진드기를 매개로 한 질환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살인 진드기 병’이라고 불리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하 SFTS)의 악명이 높다. SFTS의 치사율은 6~30%가량이며, SFTS에 걸리면 6~14일의 잠복기를 거쳐 38도 이상의 고열, 소화기 증상(구토, 설사 등), 전신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인다. 증상이 심해지면 다발성장기부전으로 이어져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2011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SFTS은 발견 당시 사망률이 무려 30%까지 나왔다. 국내에서는 2013년 5월 최초로 발견된 후 지난해까지 총 339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73명이 사망했다. 해마다 사망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SFTS를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해야 하는 질병으로 선정했다. 아직 예방 백신이나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2mm밖에 안 되는 진드기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진드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진드기로 인해 죽게 될까 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그것은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증명할 수 없기에 사후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사망 후에도 의식이 지속되리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본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다만 죽은 이후의 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가 죽음을 두렵게 하는 것이다.


인류는 아담 이후 그 누구도 스스로는 사망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사망의 종이 되고 만다. 사람은 10년을 살든지 100년을 살든지 결국에 가서는 사망의 다스림을 받게 되니 이처럼 허무한 것이 있을까. 이 허무한 인생길은 영원히 살지 못하는 나그네 세상이다. 모든 인류는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죽기를 무서워하며 사단의 종노릇하다가 결국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끝을 맺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에 처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그러나 이러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다. 그들은 산 속으로, 동굴로, 심지어 시신이 안치된 지하 분묘 카타콤에까지 숨어 예배를 드려야 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다신교 로마의 극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오히려 순교를 택했다. 굶주린 사자들에게 던져져 찢겨질 때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그리스도를 찬양했다. 네로 황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괴물이라고까지 했다. 그들은 화형을 당하며 인간이 느끼는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는 작열통(灼熱痛)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찬양하며 천국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로 받아들였던 이유가 있다. 바로 둘째 사망에서 해방시켜주신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10~11)


그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찬양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본체시다(빌립보서 2:5~8).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사망의 종노릇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따라서 사단 마귀는 초림 때나 재림 때나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심판하러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가 더없이 귀하고 보배로운 존재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그 은혜로 구원을 얻고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세상 끝 날에 사망의 종이 되어 두려움에 떠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사람 되어 오실 것을 알려주고 있다. 영원한 생명이 담긴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세상 끝 날 등장하신 그리스도, 성령과 신부를 영접해야만 인류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참고자료>
1. ‘20대 외국인 남성 야생진드기 감염병으로 사망’, YTN, 2017. 8. 1.
 2.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쯔쯔가무시증 등 살인 진드기병 증가해 주의’, 이데일리, 2017. 8. 8.

 

 


 

 

 

 

 

 

 

 

 

 

 

출처는

https://pasteve.com/?m=bbs&bid=bcircles&uid=4833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라 하면 성경에 관심 없는 비(非)기독교인들조차 십자가의 수난을 먼저 떠올린다. 2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지났지만 예수님의 고통은 ‘인류를 위해 대신 피 흘리신 고결한 희생’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으며, 대가 없는 사랑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있다.


예수님의 희생과 인류의 구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남긴 약속이란 과연 무엇일까? 2천 년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가 확인해보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유월절을 앞두고, 성경의 기록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백성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환영한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소경과 다리 저는 자들을 고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며, 대제사장들은 물론 장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들의 불법과 외식을 꾸짖으신다.


예수님 등장 후 곤란에 처하게 된 대제사장 무리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에서는 ‘나사렛 이단’을 해하려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계략을 꾸미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즈음,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줄 방책을 의논한다. 예수님을 잡을 방법을 고심하던 그들은 기뻐하며 유다에게 은전 30냥을 건넨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이들에게 넘겨줄 기회를 엿본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든 예수의 거처를 알면 고하여 잡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수난 전의 만찬


 유월절 당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지킬 장소를 예비하라고 명하신다. 말씀하신 대로 한 다락방에 자리가 마련되고, 저물녘에 이르러 예수님이 그리로 향하신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시며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모두 둘러앉은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이것은 내 몸이요 이 잔은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는 말씀과 함께.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사랑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이 배신할 것과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미리 알리신다. 주를 위해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했다고 호언장담하는 베드로에게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가장 처절한 고난을 앞둔 순간, 예수님은 철저히 고립되고 있었다.

 

고난의 시작


 예수님은 제자 몇 명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기신다. 잠시 후 닥칠 고난에 고민하시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들어 깨어날 줄 몰랐다.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된다.


같은 시각,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 들이 파송한 큰 무리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다다른다. 유다는 자신이 먼저 입 맞추는 자를 잡으라고 군사들과 사전에 군호를 짜놓은 상황이었다. 각본대로 유다가 예수님께 나아가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하고 입을 맞추자 무리가 예수님을 사로잡는다. 제자 중 하나가 급히 검을 빼서 맞서지만 예수님이 만류하신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친다. 군대와 유대인 하속들은 예수님을 결박해 가야바의 장인이자 대제사장 중 하나인 안나스에게 끌고 간다. 심문을 마친 안나스는 예수님을 가야바에게로 보낸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는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하던 중,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말하라”는 대제사장의 추궁에 예수님이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라고 답하신다. 대제사장이 옷을 찢으며 소리친다.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증인을 더 요구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다!”


무리는 “사형에 해당한다”며 맞장구친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한다.

 

“다 이루었다”


새벽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관정으로 끌고 가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다”며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고소한다.


당시 유대 사회는 자치적인 사법제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사형 집행권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총독의 승인이 필요했다. 빌라도가 죄를 찾지 못하고 예수님을 돌려보내려 하지만 무리는 “갈릴리에서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가르치고 선동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빌라도가 유월절에 죄인 한 명을 풀어주는 전례에 따라 예수님과 죄수 바라바 중 누구를 풀어줄지 유대인들에게 묻는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민란 때의 살인죄로 붙잡힌 죄수였다.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죄 없는 예수님 대신 극악무도한 살인자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한다. 예수님을 놓아주려 애쓰던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격앙된 반응에 두려움을 느끼며 결국 예수님을 재판석에 앉힌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대인들의 요구는 그칠 줄 모른다. 이유를 물어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더욱 크게 고함칠 뿐이다. 민란이 날 듯하자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외친다. 백성들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친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다. 군병들은 가시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조롱하며 침 뱉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갈대로 머리를 친다. 희롱을 끝낸 병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다시 예수님을 끌고 간다.


오전 9시경,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십자가는 중죄인을 다스릴 때 사용되던 사형 도구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십자가형을 가리켜 ‘죄인을 공개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고안한 가장 끔찍한 죽음’이라 표현했다. 영국의 유대계 작가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열사병, 굶주림, 질식, 충격, 갈증을 통한 느린 죽음’이라 기록했다.


극심한 통증이 예수님을 서서히 옥죈다. 행인들은 고통에 신음하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며 모욕한다. 대제사장들도 무리와 함께 “저가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할 수 없구나.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고 조롱한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진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내가 목마르다”고 이르신다.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댔다. 이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 하시고 비로소 머리를 숙이신다.

 

예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비밀, 새 언약


 언뜻 보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으므로 구원의 계획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은 우연도 아니고 정황상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도 아니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보여주신 하나하나의 과정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었던 구원의 경륜이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라는 말씀의 성취였다.


유월절에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것은 내 살과 피”라고 언급하신 것에도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이 역시 구약의 역사와 예언을 따른 것이다. 출애굽 당시 지킨 최초의 유월절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예식이 있었다. 이를 행한 백성들은 어린양의 희생을 힘입어 재앙을 면하고 400여 년간 종살이했던 애굽에서 해방받았다. 이 같은 역사를 따라 이 땅에 ‘어린양’(요한복음 1:29)으로 임하신 예수님은 인류를 속박하는 죄와 사망의 사슬을 끊으시려 자신의 피에 죄 사함과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바로 새 언약이다(누가복음 22:19~20).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의 피 흘리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때로부터 2천여 년이 지났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에 빼곡히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패배가 아닌 승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혈로써 맺어주신 새 언약의 유월절은 알지 못한다. 폐지되어버린 율법이라 치부하기도 하고, 진짜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 행위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에서 2천 년 전 유대인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너희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려야 하는 십자가 고통을 참아내겠다’는 다짐과 의지가 깃들어 있다. 예수님의 가없는 사랑과 희생에 감복하면서도 유월절에 담긴 축복과 구원을 간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인상 깊게 보면서도 유월절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의 간곡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참고자료>
『예루살렘 전기』(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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