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안식일예배와 바벨론에서 지키는 일요일 예배.

둘 중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約束)이 담겨 있지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예배입니다.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가 단지 하루 차이일까요? 어떤 사람은 “안식일 예배나 일요일 예배나 하루 차이인데 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식일과 일요일은 단지 하루 차이가 아닙니다. 이는 성경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서 생긴 오해입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고, 두 책이 ‘약속’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 알더라도 두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약속이 담긴 화폐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약속들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장 쉬운 예로 지폐가 있습니다. 종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종이는 1만 원, 또는 5만 원, 심지어는 수십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종이(수표)도 있습니다. 왜 비슷한 종이인데 어떤 종이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는 반면, 어떤 종이는 의미 없는 휴지 조각일까요? 바로 지폐는 ‘약속’이 있는 종이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은 열심히 일한 후에 그 대가로 종이 몇 장을 받을까요? 그 종이만 있으면 그것으로 원하는 음식도 사먹고, 집도 사고, 차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표와 아주 비슷하게 종이를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흔히 말하는 위조수표입니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진짜 수표의 가치, 아니면 절반 정도 가치라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냥 휴지 조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안식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십계명 돌비에 새기신 하나님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의 차이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안식일 예배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큰 죄를 지은 우리들을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신 날이 안식일입니다(로마서 6:2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영원한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을 통해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인 줄 알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출애굽기 31:13~14)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얼마나 아끼시고 사랑하셨던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십계명 돌비에 제4계명으로 친히 기록해주셨습니다(출애굽기 20:8). 신약시대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을 우리 영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날로 선포하셨습니다(마태복음 12:8). 예수님을 따랐던 초대교회 제자들도 이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매주마다 안식일에 모여 기도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 교훈을 영적 양식으로 삼았습니다(사도행전 17:2~3, 18:4).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일요일 예배

 

일요일 예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가톨릭출판사 발행, 교부들의 신앙)


성서에는 안식일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로 명시되어 있으니 ··· 이것은(일요일) 비록 성서에 명시에 글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

(가톨릭출판사 발행, 억만인의 신앙)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일요일 예배는 어떤 약속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즉 수표와 비슷한 종이가 수백, 수천 장이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며,

진짜 수표 한 장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같은 한 장의 수표라도 가치는 그 위에 기록된 만큼의 가치를 가집니다.

1억이라 적혀 있으면 1억의 가치를, 10억이라 적혀 있으면 10억의 가치를 가집니다.

안식일에는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유월절에는 영생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작은 믿음의 행위인 예배를 통해 엄청난 축복을 약속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는 https//pasteve.com/the-sabbath-day-and-sunday/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 – 하나님의 약속(約束)이 담긴 예배일은 언제일까?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 둘 중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約束)이 담겨 있지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예배입니다. 안식일과 일요일 예배가 단지 하루 차이일까요? 어떤 사람은 “안식일 예배나 일요일 예배나 하루 차이인데 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식일과 일요일은 단지 하루 차이가 아닙니다. 왜 그런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pasteve.com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938

 

지난달, 태어난 지 10개월 정도 된 영국의 한 아기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찰리’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는 미토콘드리아결핍증후군(Mitochondria Deficient Syndrome)을 앓고 있었다. 미토콘드리아가 결핍된 찰리의 근육과 인체기관은 약화되었고 장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두뇌도 심하게 손상되어 호흡기 등의 연명치료 장치에 의존해 간신히 목숨을 이어갔다.


찰리의 치료를 담당해온 런던의 한 병원은 아기의 뇌 손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부모에게 연명치료 중단을 권유했다. 영국 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찰리의 고통을 연장할 수 없다”며 연명치료 중단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찰리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찰리의 생명연장 중단 판결에 반대하면서, 아이의 생명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전 세계에서는 찰리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미국의 한 병원이 찰리를 ‘뉴클레오사이드 치료법’으로 고쳐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찰리를 진단한 미국 의료진은 “너무 늦었다”며 살릴 방도가 없다는 소견만 밝혔다. 결국 영국과 미국 두 나라가 어찌해보지도 못한 채, 10개월 된 아기는 짧은 생을 미감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보존에 있어서 미토콘드리아가 갖는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사람이 살아 움직이도록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세포 속 미세기관이다. 몸 속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통해서 에너지원인 ATP를 합성하는 역할을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세포가 살고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에서 기능이 상실한 세포를 죽이는 역할도 하는데, 이는 암세포로 발전하거나 다른 세포로 변이되는 것을 막는다. 또한 호흡을 관장하는 중심적 구실을 하며 당과 지방산의 산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의 인체에는 약 1경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존재한다고 한다. 사람의 뇌와 근육, 장기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호흡하고 사고하며 행동하는 등 활기찬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를 생명의 DNA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각하기 싫겠지만, 만약 나에게 미토콘드리아가 결핍돼있다면 먼저 산소 호흡이 힘겨워지고 뇌의 기능이 멈출 것이다. 근육, 장기, 신경계 부위에도 여러 병중이 나타나다가 끝내 숨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잘못된 신앙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나타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계명’이 결핍되었을 때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잠언 19:16)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시편 89:31~32)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징계가 임하고 그 죄악을 물어 매질할 것이며 끝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무리 믿음의 연륜이 길다 해도 하나님의 계명이 결핍된 신앙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미토콘드리아가 결핍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신앙에서 결핍되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일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애굽기 20:8)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 중 하나는 안식일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구원을 받았던 믿음의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안식일을 지켰다. 이천 년 전 구원자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새 언약 안식일을 지키셨다. 예수님께서 친히 본보여주신 안식일 계명은 우리 영혼의 세포를 건강하게 살리는 영적 미토콘드리아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1서 5:3)


천국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부디 돌연변이 세포와 같은 잘못된 계명을 지켜 영적인 찰리의 비극은 그만 멈추길 바란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셨다(신명기 5:10).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지켜서 영적인 뇌와 근육을 단련하여 천국에 무사히 입성하자.


<참고자료>
1. ‘英 희소병 아기 '찰리' 부모, 끝내 연명치료 포기…'미토콘드리아결핍증후군'이 뭐길래’, MBN뉴스, 2017. 7. 25.
 2. ‘미토콘드리아’, 두산백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무더위를 날려보낼 수 있는 시원한 곳은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다. 무더운 여름을 위한 휴가지로는 뭐니 뭐니 해도 탁 트인 바닷가가 제격일 것이다.


그런데 바다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한 가지 무서운 규칙이 있다. 이름하여 ‘이안류(離岸流)’라는 해류의 규칙이다. 언론을 통해 종종 해안가에 있던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는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빠르게 휩쓸려가는 이안류 때문이다.


파도는 대개 바다에서 해안가로 밀려오지만 이안류는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급하게 흘러나간다. 그래서 ‘역파도’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이안류가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꼽을 수 있다. 최근 3년 동안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200여 명이 이안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됐고, 미국에서는 1년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이안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해안가는 뭍에 사는 인간에게는 매우 위험한 자연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그 육지가 마치 지옥과 같은 곳이라면 어떨까? 그 육지를 탈출하고 싶은데 감시는 삼엄하고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배도 없는 상황이라면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휩쓸려나가는 이안류야말로 자유를 향한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엉뚱한 발상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안류를 이용해서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을 쳤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빠삐용이다.


빠삐용은 영화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1973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작품 ‘빠삐용’은 살인죄의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하는 프랑스의 무기수 앙리 샤리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어로 나비가 빠삐용(papillon)인데, 그의 가슴에 나비 문신이 있어서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빠삐용은 친구 드가와 함께 여러 차례 탈옥을 감행한다. 그때마다 탈옥에 실패했고, 그들은 결국 탈옥이 불가능해 보이는 섬으로 끌려간다. 악마의 섬이라 부르는 섬 근처에는 상어가 우글거리고 파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빠삐용은 끊임없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의 그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날마다 해안 절벽에 앉아 섬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탈출할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자신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규칙’을 발견한다. ‘이안류’가 그것이다.


빠삐용은 파도를 바라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파도가 일곱 번의 주기로 바뀌며, 그중 가장 강한 일곱 번째 파도가 칠 때 그 이안류를 타고 섬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영화는 코코넛 자루를 타고 망망대해로 사라지는 빠삐용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다.

“빠삐용은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여생을 자유의 몸으로 살았다. 이 악명 높은 기아나의 감옥도 그를 굴복시키진 못했다.”


빠삐용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견했던 것이 이안류의 규칙이었다. 악마의 섬 쪽으로 늘 거칠게 다가오는 파도 속에서 일곱 번째마다 발생하는 이안류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 규칙에 몸을 실어서 빠삐용은 드디어 악마의 섬을 탈출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예레미야 31:35~36)

 


낮과 밤과 바다의 파도 치는 것을 규정 즉 규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지구와 달의 인력으로 밀물과 썰물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파도가 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규정이라고 하였고, 또 규례라고 하였다.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편 119:91)

 


빠삐용이 발견한 이안류의 규칙은 바다를 격동시켜 파도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며 천지의 규례다. 이안류의 규례가 빠삐용에게는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범죄한 천사들의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범하고 이 땅으로 쫓겨났다. 형무소인 이 땅에서 살아가며 인생들은 죄의 사슬을 풀지 못한 채 사망의 두려움에 매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형수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한 육체에는 서서히 질병과 가난과 고독이 깃든다. 사망의 두려움이 조여오는 불안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생들에게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의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파도에게 규정과 규례를 허락하셨다. 낮과 밤이 번갈아 임하면서 인생들에게는 일자와 연한이라는 규칙이 정해진다. 악마의 섬으로 들이치는 수많은 파도 중에서 특별한 이안류의 규칙이 있었던 것처럼 인생들에게 임하는 많은 일자와 연한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규칙인 일곱째 날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를 규례로서 허락하셨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레위기 26:2~5)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2~14)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향하는 모든 것이 사방으로 막혀있고, 사망이 지배하는 이 외딴 행성 지구에서 하루하루 삶의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사방이 가로막힌 절망의 섬으로 들이치던 파도에 그 섬을 탈출할 수 있는 이안류의 규칙이 있었던 것처럼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안식일과 유월절 등의 규례와 법칙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빠삐용은 이안류의 규칙에 몸을 맡겨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일곱째 날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에 우리의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 그 특별한 규례와 법칙이 우리를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나래를 펴는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나는 절기를 지키러 즐거운 몸부림을 치며 나비처럼 날아서 시온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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