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교회 성도를 제외하고

너도나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미명 아래,

해마다 12월 25일만 되면 시끌벅적하게 치러지는 크리스마스가

성경에 기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지

하나님의교회에서 알아보셔야하지 않을까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배경에 관해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태와 누가만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마저도 정확한 날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 예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탄생 드라마가 펼쳐진 2천 년 전 그 역사 속을 알아보세요~

 

https://pasteve.com/the-birth-of-jesus-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탄생 스토리(pasteve)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탄생 스토리(pasteve)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미명 아래 해마다 12월 25일만 되면 시끌벅적하게 크리스마스가 치러진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배경에 관해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마태와 누가만이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마저도 정확한 날짜는 언급하지 않는다.

pasteve.com

 

 


 

 

출처는 https://www.pasteve.com/?m=bbs&bid=bcircles&uid=4942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튼’이 발표한 역사극「리슐리외 추기경」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 리슐리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 때 재상으로 활동한 실존 인물이다. 희극 속 리슐리외는 적들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침착한 목소리로 하인에게 “펜은 칼보다 강하네. 칼을 치우게. 국가는 칼 없이도 구할 수 있네.”라는 대사를 읊었다고 한다.


이 표현은 당시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져갔고, 오늘날에는 영국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케임브리지 딕셔너리즈는 “이 말이 ‘사상과 저술은 무력이나 폭력보다 사람들과 사건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즉 사고∙ 언론∙ 저술∙ 정보의 전달은 직접적인 폭력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펜 끝에서 생기는 힘은 작가의 이데올로기와 깊이 연결된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작가가 가진 사상과 이념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짧은 글귀라도 그 속에는 작가의 신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표적인 저항시인이 있다. 윤동주다. 그는 우리나라의 비참한 현실에도 절망하지 않고 ‘펜’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쳤다. 그가 남긴「서시」,「참회록」,「길」,「별 헤는 밤」등의 작품에는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번뇌와 고민, 울분, 자책 그리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한 신념과 소망이 짙게 담겨있다.


윤동주 시인은 안중근, 윤봉길 의사처럼 어떤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항일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작품으로 당시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펜’을 통해 조국독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오늘날 그가 강인한 의지를 지닌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처럼 한 작품 한 작품 속에는 작가의 사상과 정신이 오롯이 들어있다. 전 세계인의 사상과 시대정신을 초월하여 오랜 시간 동안 스테디셀러의 자리에서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 있다. ‘인류 구원’이라는 이념으로 일관되게 써내려간 책, 성경이다. B.C. 1500년경 모세에 의해 기록된 창세기를 시작으로 A.D. 96년경 요한에 의해 기록된 요한계시록까지, 무려 16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왕조를 거치면서 수많은 기자들의 손을 빌어 기록되었다.


오랜 세월, 격동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 성경의 원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인류 구원’이라는 중심생각을 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구원의 의지를 더욱 분명히 보여주셨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을 직접 이루시면서까지 당신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마태복음 26:52~54)


성자시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고난을 피하기 위해 생명을 구걸하거나 세상에 무릎 꿇지 않으셨다. 만약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칼에 힘을 빌리셨거나, 천사들의 힘을 요구하여 죽음의 상황을 모면하셨다면, 오늘날 인류의 죄 사함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 그대로 당신의 피를 흘려 목숨을 내놓으셨다(에베소서 1:7). 예수님의 이같은 결연한 의지는 성경의 기록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전 세계 3분의 1인 약 24억 명이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펜이 칼보다 강한 이유는 펜 끝에서 기록된 글이 거짓되지 않고 진실하여,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죽음의 길로 가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힘을 가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펜을 가지신 분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펜은 칼보다 강하다” 출처는 19세기 영국 희곡’, 연합뉴스, 2015. 1. 9.

 

 

 

 


 

 

 

 

 

구속(救贖)은 ‘구원할 구, 속죄할 속’ 자를 써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내는 일을 뜻한다.

누군가를 대신해 값을 치르거나 벌을 받음으로써 구원한다는 의미다.

성경에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며,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어 있다.

 

∙∙∙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 (출애굽기 6:6~7)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대표적인 구속의 사례로는 애굽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주신 역사다.

당시 이스라엘은 4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애굽으로부터 온갖 학대와 핍박을 받으며 서러움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해주시기 위해 놀라운 계획을 진행하셨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어린양의)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1~13)


주전 1498년경 애굽 전역에 통곡과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애굽 왕 바로의 장자에서부터 짐승의 첫 새끼까지 모든 초태생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출애굽기 12:29~30).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그동안 이스라엘의 독립을 완강히 거부하던 바로왕이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역사에는 주목할 만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담겨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옥과도 같은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장자를 멸하는 재앙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기 위해 어린양의 희생을 요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목숨의 대가로 애굽의 끔찍한 압제에서 ‘구속’받을 수 있었다.


구속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류의 구속이 완성된다고 기록했다(로마서 3:24).

구속의 대상이라는 것은 옛적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날 우리도 무엇엔가 억압되어 종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나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면 사망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이다. 결국 모든 인류가 사망 죄에 억압되어 죄악 세상에 종살이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로마서 7:24 참조).


인류의 죗값을 대속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사망이라는 형벌이다(로마서 6:23 참조). 그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당하신 십자가 형벌은 심하게 매질한 사람을 말뚝 위에 묶거나 못 박아 두는 방식으로

신체의 극심한 고통과 함께 수치심, 배고픔, 목마름,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잔인한 형벌이다.

여기에는 또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목숨을 내던지셨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채찍에 맞은 고통으로 쇼크를 받아 즉사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세차게 내리치는 채찍의 괴로움을 고스란히 감내하신 예수님께서는 70kg로 추정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에 못박혀 운명하셨다.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목숨의 대가로 죄와 사망에서 구속받게 된 것이다.


3500년 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된 것은,

죄악 세상에서 종살이하는 인류가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피로 구속될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결국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월절은 ‘종살이’라는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희망의 절기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신∙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구속의 방법은 분명하다.

오직 유월절을 지켰던 이스라엘 백성만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운명처럼 떠안고 있는 죄의 종살이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 역시 동일하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며 놀라운 ‘구속’의 역사인 것이다.

구속(救贖),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 나아오세요~


<참고자료>

1.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2. ‘예수를 만나다 –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는 몇 kg이었을까, 중앙일보, 2017. 1. 11.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의 조건

누구나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행복을 원하고,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단, 각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어서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는 재물이나 명예를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반대로 누가 보기에도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나라별 행복 지수를 조사하면 부유한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가 더 높은 순위에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영어로 행복(happiness)이라는 단어는 행운(good fortune)이라는 뜻에 가깝다. happiness와 happening(뜻밖의 일, 사건)은 각각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만 두 단어의 어원인 ‘hap‘은 우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행복에 관한 명언들을 보면 행복은 사람의 의식적인 노력만 있다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중에 얻을 수 있는 우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서 행복의 조건에 대해 검색해 보면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 보다는 인간 관계든, 운동이든, 식사든 욕심 부리지 않고 고루 하라는 일반적인 조언들이 대다수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의 조건

성경에서는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고 있을까.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행복을 얻을 수 있고, 그 행복은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아서 사망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요한계시록 21:1~4)으로 갈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제대로 지키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이사야 33:20~24)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거기(시온성에)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허락하여 주신 규례, 절기를 지키는 시온으로 가야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사람들이 임의로 만들어 지키는 절기들을 지키는 곳이 시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예레미야 31:31, 누가복음 22:20)을 지키는 곳,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진정한 시온이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늘 행복하다 말하고, 항상 밝은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 하신 규례들은 우리들을 힘들게 하려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람들에게 행복한지 물어봤을 때 선뜻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확신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구원받았으니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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